북한처럼 부자세습… '훈센 왕조' 시작
23일 총선서 의석 싹쓸이한 지 사흘 만
"집권당 대표와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
38년간 철권통치를 펼쳐온 ‘아시아의 독재자’ 훈센(70) 캄보디아 총리가 정권을 장남 훈마넷(45)에게 넘긴다. 합법을 가장한 총선을 통해 정권 연장에 성공한 지 사흘 만이다. 부자간 권력 세습이 이뤄지면서 사실상 '훈센 왕조'가 시작됐다. 이미 최악인 캄보디아 민주주의는 더 추락하게 됐다.
훈마넷 22일 정식 총리 취임
26일 크메르타임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훈센은 이날 오후 국영방송 특별연설에서 “나는 물러나고 훈마넷이 새 정부를 이끌 것”이라고 발표했다. 훈마넷은 캄보디아 국왕의 임명을 거쳐 다음 달 22일 총리에 취임한다.
훈센의 은퇴는 예고된 수순이다. 그는 2021년 12월 장남을 ‘미래 총리 후보’로 지명하며 후계자로 점찍었다. 이달 23일 총선을 앞두고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3, 4주 후 훈마넷이 총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총선에서 훈센이 이끄는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이 압승하자마자 발 빠르게 권력 세습에 나선 셈이다. CPP는 이번 선거에서 전체 의석 125석 중 120석을 싹쓸이했다. 나머지 5석도 친정부 성향 정당이 차지했다. 훈마넷 역시 수도 프놈펜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는 훈센이 경쟁자를 제거하며 독주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월 캄보디아에 남은 마지막 독립 언론 ‘민주주의의 소리(VOD)’ 폐간을 명령하는 등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야당 지도자인 삼랭시 전 캄보디아구국당(CNRP)의 25년 공직 출마 금지령을 내리는 등 정적들을 제거했다.
권력 대물림이 현실이 되면서 캄보디아의 민주화는 더 뒷걸음질 치게 됐다. 캄보디아는 지난 2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평가에서 선거 절차·다원주의 부문에서 북한과 같은 0점을 받았다.
부친 그늘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듯
훈마넷은 캄보디아인 최초로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영국 브리스틀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현재는 캄보디아군 부사령관과 CPP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아시아의 스트롱맨’으로 평가받는 아버지와 달리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을 지닌 합리주의자이며, 개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각에서는 훈마넷이 20대 서방 국가에서 유학한 이력을 이유로 그를 ‘친서방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가 정권을 잡을 경우 캄보디아가 친중·반미 기조에서 벗어나 서방 국가와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훈센이 사실상 ‘상왕’으로 군림하며 섭정에 나설 가능성이 큰 만큼 훈마넷이 당분간 부친의 그늘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훈센은 “집권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퇴임 후 국왕 최고 자문위원장을 맡을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앞으로도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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