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당국자들 인용해 보도... "크렘린궁, 절대적 혼란"
"푸틴, 아무 행동도 못 취해... 러시아군 지도부 분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민간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 당시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우크라이나·유럽 안보 당국자를 인용해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달 23, 24일 반란을 일으켰을 때 푸틴 대통령은 마비된 것처럼 보였고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무장반란 사태 발생 2, 3일 전부터 러시아 보안기관으로부터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다. 러시아 보안 당국은 대통령 경호 인력을 늘리고 크렘린궁 전략 시설 보안을 강화했지만, 반란 진압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은 하지 않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유럽 보안 당국 관계자는 WP에 “푸틴은 반란을 (사전에) 막고, 주도자를 체포하기로 결정할 시간이 있었다”며 “그러나 실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모든 (의사결정) 단계에서 마비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크렘린궁에는) 절대적인 당혹감과 혼란이 있었다. 오랫동안 그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덧붙였다.
실제 프리고진의 용병 부대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으며 36시간여 만에 모스크바 남부 약 200㎞ 지점까지 진격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주 윌리엄 번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반란 사태 36시간동안 러시아군과 정책 결정자들의 모습에 대해 “표류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평했다.
WP는 이 혼란이 러시아군 지도부 내 분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프리고진은 무장반란 당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육군참모총장을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는데, 보안·국방 당국 고위층에서도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인사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익명의 나토 고위 당국자는 WP에 “모스크바의 일부 고위 인사는 프리고진이 요구를 달성하면 그를 지지할 준비가 돼 있었던 듯하다”며 “많은 러시아 장교와 병사들은 군 최고위층 변화가 생기길 바랐고,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와) 싸우기에 더 쉬워질 것’이라고 믿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내부 기류 탓에 푸틴 대통령도 적극적으로 반란 진압에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그러나 당시 드러난 푸틴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결과적으로 그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남겼다. 러시아 보안 당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고위 금융업자는 WP에 “러시아는 마피아의 규칙이 지배하는 나라”라며 “푸틴 대통령은 ‘마을에서 가장 터프한 남성’이라는 명성을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WP 보도 내용을 ‘헛소리’라며 전면 부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 공유한 것”이라며 “말도 안 된다(nonsense)”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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