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 붙잡힌 미국, 확전 꺼릴 것’ 판단
위기감 자극해 주변서 미국 내쫓으려는 듯

지난달 2일 연례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열린 싱가포르에서 로이드 오스틴(오른쪽) 미국 국방장관과 리상푸 중국 국방부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싱가포르=AP 연합뉴스
2월 중국 정찰풍선의 미국 영공 침범 사태 이후 경색됐던 미중 정부 간 고위급 소통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달과 이달 미국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이 잇달아 베이징을 찾은 데 이어 무역 제재 주무장관인 상무장관의 중국행도 조만간 성사될 전망이다.
하지만 군사 분야는 분위기가 다르다. 고조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 수위를 감안할 때 상호 오판을 막을 대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도 소통이 재개될 기미가 없다. 양국 군사 대화는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단됐다.
백악관, “키신저는 만나 주면서…” 불쾌감
대화를 거부하는 건 중국이다. 매년 6월쯤 열리는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미중 장관이 군사 현안을 논의하는 게 관례였다. 중국은 올봄 미국의 국방장관 회담 요청을 거절했다. 리상푸 국방부장(장관)은 19일 베이징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것으로 군사 대화를 의도적으로 보이콧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민간인은 중국 국방부장을 만날 수 있는데 미 정부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중국의 대화 거부는 다분히 계산적인 행보라는 게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의 분석이다.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라는 것이다. 20일 포린어페어스에 실린 윤선 스팀슨센터 중국 프로그램 국장의 기고에 따르면, 대화가 긴장을 완화하고 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중국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섣불리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게 중국 판단이다.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러시아와 사실상 전쟁 중인 상황에서 미국이 태평양으로 전선을 확대하기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이다.
침묵은 중국의 유용한 전술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보기에 답답한 쪽은 미국이다. 어떤 조건이 중국의 군사 행동을 촉발할지, 즉 ‘레드라인’에 대한 정보가 없는 한 미국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 불확실성이 줄고 ‘깜깜이’ 상태를 벗어나면 미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져 불리해진다는 게 중국의 생각이다.
미 외교지 “중국, 침묵 지렛대로 양보 유도”

지난해 10월 1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 개회식이 끝난 뒤 군 참석자들이 퇴장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요즘 중국 ‘벼랑 끝 전술’의 대담성은 미국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위기에 대비해 마련해 둔 ‘핫라인’(직통 전화)도 먹통으로 만들었다. 정찰풍선을 발견한 미국이 연락을 시도했을 때도 중국은 응답하지 않았다. 목적이 관철될 때까지는 불가피한 소규모 충돌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이런 태도에 반영된 것으로 미국 정부는 해석한다.
중국의 목표는 정찰기를 띄워 중국을 들여다보고, 걸핏하면 중국 주변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미국을 멀리 내쫓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타협하기 힘든 요구다. 하지만 내년 초 대만 총통 선거에서 독립 성향 민주진보당(민진당)이 다시 집권한다면 중국이 군사 행동을 감행할 개연성이 없지 않은 만큼, 미국이 잠자코 있어서만은 안 된다고 윤 국장은 주문했다. 주미 중국대사 등 닫히지 않은 창구를 통한 군사 소통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하고, 오는 11월 성사를 추진 중인 미중 정상회담 준비를 핑계 삼아서라도 예측 가능성을 키우라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