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책임 따지다 감정 상하는 경우 많아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려 해도 스트레스↑
장마철을 맞아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집에 물이 새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수리 비용을 써야 해 예민해진 상황에서 누수 원인을 찾다가 책임 소재를 두고 이웃과 갈등을 빚어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층간 누수 갈등을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송 절차가 만만치 않아 가능하면 협의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집중 호우 지나간 뒤 누수 사례 늘어나
한 차례 전국적으로 폭우가 몰아치고 난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누수 책임을 두고 이웃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글들이 잇달아 게시되고 있다.
한 시민은 ‘이게 외부 누수인지 윗집 누수인지 가르쳐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물이 새 얼룩진 사진과 그간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를 본 시민은 “예전에 베란다 확장공사를 했던 집이라 중간에 창틀이 있고 창틀 틈에서 물이 5~7분 간격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윗집에 사정을 전했더니 “건물 자체가 오래돼 외부에서 새는 것 같으니 비가 그치고 원인을 찾아보자”며 “기다려보자”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 피해를 보고 있지만, 윗집의 미온적인 태도에 기다릴 수밖에 없어 자문을 구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또 다른 시민은 ‘6년 동안 누수 피해’라는 글을 올려 답답함을 호소했다. 6년 전에 이사 온 글 작성자는 “이사 후 6개월 정도 지나고 윗집에서 보일러가 터져 물난리가 난 적이 한 번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공사를 해 물이 새진 않았는데, 몇 군데는 계속 젖어 있고 물이 뚝뚝 흘러나와서 계속 윗집에 사정을 전했지만, 윗집에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가 일단 비용을 들여 누수 관리업체를 불러 정확한 누수 원인을 찾았는데, 윗집에서 아는 업체에 공사를 맡기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록 휴대폰 문자메시지에는 응답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등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작성자는 “윗집에서 해결을 하려 하지 않으니 미치겠네요”라며 “민사소송이 답일까요”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층간 누수 갈등은 이처럼 피해를 보는 입장과 책임을 지기 싫어 외면하는 입장이 부딪혀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이 심화해 살인 사건까지 발생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부장 권현유)는 지난 14일 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 등 혐의로 정모(39)씨를 구속기소했다.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정씨는 아래층에 사는 70대 여성이 반년 전 층간 누수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있다가 최근 독촉을 받자 이에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살해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피해자 집에 불을 지르고,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까지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누수 해결 독촉하자 아랫집 거주자 살해까지
법률 전문가들은 층간 갈등이 지속돼 원만한 해결이 어려울 땐 감정적으로 대응해 일을 키우지 말고 법적 절차를 거쳐 해결할 것을 권유한다.
우선, 누수 발생 지점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경우 건물 외벽이나 공용 배관 등 공용 부분에서 새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하자담보 책임기간이 지났는지 알아보고, 아직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사업주체인 건설사에 하자 보수를 요구하거나 그에 준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책임기간이 지났다면 공용 부분 누수 책임을 입주자대표회의에 물을 수 있다. 누수 발생 지점이 공용 부분인지 명확히 특정할 수 없을 때는 집합건물의소유및관리에관한법률 등에 따라 공용 부분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해 책임을 지울 수 있다. 공용 부분이 누수 원인이 아니라는 건 입주자대표회의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누수는 윗집 전용 부분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윗집에 소유자가 거주할 경우는 수리 비용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되는데, 소유자가 아닌 세입자가 살고 있으면 절차가 조금 복잡해진다. 누수 원인이 명확히 세입자에게 있을 때나 세입자가 소유자에게 누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손해가 훨씬 커질 경우 임차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계속 비협조적이면 형사 고소까지 가능해
문제는 세입자 가정이 고3 수험생이 공부하고 있다는 등의 특수 상황을 내세워 누수 탐지나 공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나올 때다. 이때도 민법에서 규정한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법원에 임차인을 상대로 임차인(세입자)의 비용으로 제3자로 하여금 하자보수공사를 실시하도록 하는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 결정에도 세입자가 계속 수리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수는 없지만, 지연 수리에 따른 손해보상은 물론, 정신적 피해를 근거로 위자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누수 피해가 극심한 것을 알면서도 보수 공사를 거부할 때는 예외적으로 형법상 재물손괴죄로 고소해 형사책임까지 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층간 누수로 인한 소송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벽지나 바닥 장판 등 마감재 교체 비용, 누수로 인해 책이나 옷, 가구나 전자제품이 훼손됐을 때 들어간 비용 등 실제 손해가 발생한 피해 범위를 피해자가 모두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게다가 누수 원인에 대한 객관적인 감정 결과를 얻기 위해 법원 감정을 통해 확인하는데, 통상 1년가량 걸린다고 한다.
법무법인 정우의 차태강 파트너 변호사는 “층간 누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아 소송으로 해결하려 해도 증거보전도 쉽지 않고 재판 결과를 받아내기까지 오래 걸려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며 “가능하면 이웃과 협의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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