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내용 '반복' "믿음 안 간다"
수십 건 보내다 진짜 위험한 땐 '0건'
긴급재난안전 문자는 켜놓아야
"하루 만에 재난문자가 30통 넘게 왔습니다. 처음에는 올 때마다 열심히 봤는데, 간 적이 없고 거주하지도 않는 지역의 알림 문자도 오고 비슷한 내용이 중복해서 오다 보니 아예 안 보게 되더라고요. 꼭 알아야 할 재난문자만 받는 방법은 없을까요?"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재난문자 끄는 법' 등이 다수 공유되고 있다. 장마철 들어 부쩍 발송건수가 증가한 재난문자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서다. 재난문자는 상황의 경중에 따라 '위급 재난 문자'와 '긴급 재난 문자' 그리고 '안전 안내 문자'로 나뉘는데 위급 재난 문자를 제외한 긴급 재난 문자와 안전 안내 문자는 휴대폰 설정을 통해 알림을 끌 수 있다.
비슷한 내용 반복 전송…"'날씨 앱'인가요"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A씨는 14일 오전 0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동안 35통의 안전 문자를 받았다. 폭우로 통제된 구간을 알리는 내용은 그렇다 쳐도, '위험징후를 발견하면 즉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거나 '많은 비가 예상되니 주의하길 바란다' 등 상식에 해당하거나 일기예보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가능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A씨는 "비슷한 내용이 자정 무렵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와 잠을 설쳤다"며 "처음에는 놀란 마음에 문자를 확인했지만 일기예보 수준의 문자가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알림이 울려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고 오히려 수면, 업무에 방해된다고만 느껴져 알림을 껐다"고 말했다.
지역별 재난 안전 문자 발송 내역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재난안전포털을 살펴본 결과, 다른 지역에서 보내고 있는 재난문자를 그대로 보냈다가 일부 문구를 추가·정정해 다시 보낸 사례도 있었다. 인천 강화군은 16일 오후 3시 34분 '지반이 약해져 곳곳에서 토사 유실과 시설물 전도 등 피해가 발생되고 있으니 외출 자제 및 하천, 농수로, 산 주변 등 위험지역 통행금지 바란다'는 안전 안내 문자를 보냈다가, 한 시간 후인 오후 4시 28분 '타 지역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우리 군도 위험 지역 통행을 금지하길 바란다'는 내용을 다시 보냈다.
안전문자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한 적도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회사원 B씨는 15일 폭우가 내리던 상황에서 차량 내비게이션에 계속해서 뜨는 안전문자를 확인하다 사고가 날 뻔했다. 차선은커녕 주변 지형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려 내비게이션 의존도가 컸는데, 끊임없이 울려대 일일이 확인 후 꺼야 하는 안전문자가 오히려 안전을 위협한다고 느낄 정도였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는 '자동차 안전문자 끄는 법' 등도 공유되고 있다. B씨는 "제발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보통의 현재 날씨를 재난문자로 보내지 말았으면 한다"며 "재난문자가 스팸처럼 여겨지면 오히려 피로감만 높아져서 진짜 재난 상황에선 아무도 재난문자를 안 볼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하루 수십 건 보내더니 정작 오송 참사 전엔 '0건'
안전문자에 대한 피로감은 단순히 '중복돼서' '중요성 낮은 내용이 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전문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탓도 크다. 충북 청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C씨는 "정작 오송 지하차도 사고에는 안전문자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지 않았나"라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선 안전문자를 많이 보냈다는 것만으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선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안전 안내 문자를 수신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C씨 말처럼 14명의 사망자가 나온 오송지하차도 참사 당일(15일), 청주 궁평2지하차도를 지나지 말아야 한다는 안전문자는 사고 2시간 29분 후인 오전 11시 49분에야 발송됐다. 청주시는 사고 발생 5분 전인 오전 8시 35분 '미호천교 인근에 저지대 침수 위험이 있다'는 재난문자를 보냈지만 이미 궁평2지하차도로 향하던 차량이 경로를 틀기엔 늦은 시점이었다. 또 다른 인근 주민도 "밤새 안전문자가 쏟아졌는데, 정작 사고가 난 지하차도에 진입하지 말라는 문자는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난문자에 구체적인 대응 지침이 없는 점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반지하 주택에 거주한다는 한 누리꾼은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지하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상으로 대피하라는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 한밤중에 주인집으로 대피하라는 건지 현실성이 없다"고 토로했다. 한 누리꾼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마치 정부는 사실을 알려줬으니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정부는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어 침공을 시작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보낼 것 같다"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 지적은 실제 북한이 우주 발사체를 쏘아 올렸던 5월에도 나왔다. 서울시가 5월 31일 오전 6시 41분 발송했던 위급 재난 문자에는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는 문구만 담겼는데 이를 두고 "대체 어디로 대피하라는 건가"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행안부 "보완해 나갈 것" 전문가들 "긴급재난안전 문자는 켜 둬야"
재난문자를 보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할 말은 있다. "보내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국민들이 조금 불편을 느끼더라도 적극적으로 위험을 알리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해외에선 선제적으로 위험을 알려준 재난문자 덕분에 인명피해를 크게 줄였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 중남부에 위치한 오클라호마주에는 올해에만 48번의 크고 작은 토네이도가 발생했다. 한 달에 약 9.6번꼴로 자주 발생한 셈이지만 사망자 2명, 부상자 15명으로 토네이도로 인한 인명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미국 기상청(NWS) 관계자는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로 '실시간 기상 예측 시스템'과 '신속한 재난 예보 시스템'을 손꼽았다.
행정안전부는 중복되는 알림을 줄이고,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담기 위해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부득이하게 안전문자 알림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모두 해제하기보다는 긴급재난문자 알림은 켜놓을 것을 권장한다. 긴급재난문자는 1시간당 50㎜ 이상 비가 내리는 '극한 호우'와 같은 '치명적인 사건'을 경고하기 위해 전송되기 때문이다. 반면 공습경보, 경계경보 등 국가적 위기 상황의 경보를 알리는 위급재난문자는 필수 수신 항목이어서 휴대폰 설정 변경으로도 수신 거부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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