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판매 아닌 책 매개 소통 '복합문화 공간'
소비자 마음 사로잡아… 5년 사이 2.8배 증가
"반짝 인기 그치지 않게 자생 구조 만들어야"
지난 10일 저녁, 울산 울주군 외곽에 자리 잡은 ‘책방카페 바이허니’에선 늦은 시간까지 중년 남성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과정의 평등, 인간적 자본주의, 공정경쟁 등 무게감 있는 단어들 사이로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교사, 회사원, 자영업자 등 50대 남성 8명으로 이뤄진 이들의 모임 이름은 ‘꼰대탈출 아저씨독서클럽’. 이날은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식재료를 소재로 경제 현안을 설명하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눴다. 4년째 멤버로 활동 중인 주우선(58)씨는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시야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도 해소된다”고 했다. 이어 “사실 남자들끼리 수다를 떨 수 있는 기회나 공간이 많지 않은데 여기선 가능하다”며 웃었다.
책방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온라인서점과 프랜차이즈 대형서점에 밀려 고전하던 동네책방이 ‘차별화’된 콘텐츠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25일 책방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따르면 전국 동네책방은 2017년 283곳에서 2022년 815곳으로 5년 사이 2.8배 늘었다. 독서 인구 감소와 맞물려 계속 줄어들고 있을 거란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다. 동네책방별 특징으로는 ‘커피ㆍ차가 있는’ 책방이 237곳(29.1%)으로 가장 많았고, 독립출판물 책방(21.0%), 큐레이션(15.6%) 등이 뒤를 이었다.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워크숍 등 정기적으로 행사를 여는 곳도 전체의 70%가 넘었다.
2019년 문을 연 책방카페 바이허니만 해도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두동면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간간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있지만 손님 대부분은 인근 학교 교사, 농부, 아이 엄마 등 동네 주민이다. 그래서 책방은 돌봄교실로, 벼룩시장으로, 백화점 못지않은 문화센터로 자연스럽게 변신한다. 바이허니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아저씨독서클럽을 포함해 시 읽기, 북 테라피 등 5개의 독서모임이다. 전체모임 회원 수는 50여 명에 이른다. 박태숙(58) 바이허니 대표는 “과거 동네책방이 책을 사고파는 상점이라면, 지금은 책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만들어내는 문화 공간”이라며 “지역 주민들이 필요할 때 공간을 빌려주고 관련 책을 제안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소개했다.
'읽는 약' 봉투로 전국구 자리매김
상호부터 남다른 경북 경주 황리단길에 있는 책방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어서어서)’도 지역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구축한 동네책방 중 하나다. 이곳의 트레이드마크는 ‘먹는 약’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읽는 약’ 봉투다. 책을 구입하면 봉투에 이름을 적어 ‘개봉 후에는 빠른 시일 내에 완독하여 주십시오’라는 주의사항 스티커를 붙여준다. 방문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평일은 500여 명, 주말에는 1,500여 명이 찾는 ‘전국구’ 동네책방이 됐다. 다음 달에는 2호점 ‘이어서’도 선보인다. 양상규(40) 어서어서 대표는 “손님 97%가 관광객인 1호점과 달리 2호점은 오롯이 지역 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책방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지금은 가오픈 기간 중인데도 벌써 꽤 많은 동네 단골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직접 책방지기로 나서 일반 동네책방과 직접 비교하긴 힘들지만 경남 양산 ‘평산책방’도 개점 두 달 만에 방문객 7만9,184명이 다녀갔다. 문 전 대통령의 큐레이션(특정한 주제 또는 독자층에 맞는 책을 선별해 제안하는 것)을 거친 책은 4만2,500권이 팔렸다. 마을 전체 인구의 10배가 넘는 1,300명이 매일 방문해, 2명 중 1명은 책을 샀다는 얘기다. 강원도 속초 ‘동아서점’, 충북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전 ‘우분투북스’, 경남 창원 ‘책방19호실’ 등도 독립서점계에서 잔뼈가 굵은 동네책방들이다.
'지속 여부' 관건, "생존 생태계 구축"
동네책방의 성공은 주민들이 책을 고를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돕고, 공동체문화를 싹 틔우는 한편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는 유ㆍ무형의 가치를 낳는 등 여러 측면에서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
관건은 지속성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최근 지역서점 조례 및 인증제,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 등으로 동네책방 육성에 나서고 있는데 이런 장려 정책이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단 의견이다. 이정은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책은 A작가 작품이 없으면 B작가 작품을 사도 되는 대체 가능 상품이 아니라 하나하나 모두 독창적인 미디어”라며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지자체, 교육청, 도서관 등 관계기관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 동네책방이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자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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