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당 피타 대표, 2차 투표 무산
헌재 의원 자격 박탈로 싹 잘라내
차기 총리 기회, 親탁신계 정당에
태국의 민주화 열망이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5월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얻으며 ‘태국 민주주의 상징’이 된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가 의회에서 총리로 뽑힐 기회조차 얻지 못하면서 그의 정치 개혁 꿈도 꺾이게 됐다. 군부가 장악한 헌법재판소는 피타 대표의 국회의원직 직무를 정지해 개혁 바람이 이어질 가능성마저 원천 차단했다.
전진당 집권, 사실상 마침표
19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로 예정됐던 태국 제30대 총리 선출 2차 투표가 무산됐다. 전진당을 비롯한 야권 8개 연합이 피타 총리를 후보로 올렸지만,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들이 “1차 투표에서 낙선한 후보를 다시 지명해선 안 된다”며 표결 거부에 나선 탓이다.
태국은 상원 249명과 하원 500명이 함께 총리를 선출한다. 과반(375명) 찬성을 얻어야 집권할 수 있는데, 피타 대표는 13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324표를 얻는 데 그치며 고배를 들었다. 엿새 만에 재도전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의원 395명이 아예 ‘재지명 불가’에 표를 던졌다.
이에 전진당 집권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 게다가 피타 대표가 후일을 도모할 가능성도 희박해졌다. 이날 의회에서 후보 자격 여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 이어지던 시각, 헌재가 그의 의원 직무 정지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총선 당시 태국 군부는 피타 대표가 방송사 주식을 보유했다고 문제를 제기했고,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이를 받아들여 헌재에 의원 자격 박탈 및 직무 정지를 요청했다. 태국 헌법은 언론사 사주나 주주의 공직 출마를 금지한다. 군부가 장악한 헌재와 선관위가 향후 행보에 나서지 못하도록 피타 대표의 손발을 차례로 묶으면서 그가 정치판에 돌아올 싹조차 잘라 냈다.
피타 대표는 2020년 해산된 전진당 전신 퓨처포워드당의 대표이자 ‘40대 개혁 기수’ 열풍을 일으켰던 타나톤 쭝룽르앙낏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 역시 군부 권력 제한 등을 주장하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정치 생명이 끊긴 상태다.
집권 기회, 제2당으로 넘어가
집권 기회는 하원 제2당인 푸어타이당으로 넘어가게 됐다. 푸어타이당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측근이자 부동산 재벌인 스레타 타위신(60)을 총리 후보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스레타는 18일 기자들과 만나 “총리가 될 준비는 돼 있다. 당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존중할 것”이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푸어타이당이 집권하려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진당과 맺은 연대를 끊고 보수 군부 손을 잡을 공산이 크다. 푸어타이당이 그간 왕실모독죄 개정에 침묵으로 일관해 온 만큼, 전진당의 각종 개혁 공약은 물거품이 됐다.
태국 정국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주의 부활과 군주제 개혁 등 변화를 꿈꾸며 전진당에 표를 던졌던 시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이날 피타 대표의 총리 후보 자격이 박탈되자 시위대 수 백 명은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플라스틱 물병을 던지거나 피켓을 들어 올리며 “군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일부는 연막탄까지 던지며 항의했다. 2020년 태국을 뒤흔든 반정부 시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에 경찰은 경계 강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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