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자금 구하러 서바이벌 경쟁 '2억9천:결혼전쟁'
연인 vs 상금에 '돈' 선택…판타지 걷힌 '마라맛'에 환호
결혼 희소해진 시대, '그들은 왜?' 간접 체험 원해
"결혼을 앞둔 애인과 2억9,000만 원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거짓말탐지기를 착용한 당신에게 이런 질문이 던져진다면? 더 곤란한 상황은 다음이다. 당신은 '애인'을 선택했지만 탐지기는 '거짓말'이라고 알린다. 옆에 있던 애인의 표정이 굳는다.
진땀 나는 이 상황은 가정이 아닌 tvN '2억9천:결혼전쟁'(결혼전쟁)의 한 장면이다. 프로그램에선 결혼을 앞둔 10쌍의 커플이 우승상금인 2억9,000만 원(평균 결혼 자금)을 두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출연진들은 통상 연애 프로그램처럼 상대에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몸짓을 하지 않는다. 대신 돈이란 현실적 문제를 우승으로 해결하기 위해 함께 헤쳐나가야 할 극한 상황인 미션에 도전하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때론 서로에 서운해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원웅 PD는 19일 한국일보에 "우리 출연자들은 멋지고 아름답게만 행동하지는 않는다"면서 "자신의 밑바닥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고 상대방의 밑바닥도 덤덤하게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판타지가 걷힌 잔혹한 현실 연애를 보여주며 프로그램은 승승장구 중이다.
한때 연애프로그램은 멋진 선남선녀들의 두근거리는 데이트를 테마로 삼았고 시청자들도 열광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과몰입하는 대신 연애감정의 진정성에 의문을 던진다. 채널A '하트시그널 시즌4'의 한 출연자는 방영 전부터 '연애 중인 상태에서 출연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방영 후엔 출연자들의 심리가 데이트 순서와 맞지 않는 타임라인 조작, 간접광고(PPL) 선물 논란이 연이어 불거졌다. 제작진은 "일자 표기에서 착각이 있었고 자막 실수로 잘못 표기됐다"고 해명했지만 반감은 커진 상황이다.
이제 연애와 결혼은 보편적이지 않은 이벤트가 됐다. 지난해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은 50%에 불과했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를 꼽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전쟁' 시청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CJ ENM 유튜브 채널 설문조사에서는 애인과 2억9,000만 원 중 애인을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22%(지난 18일 기준)에 불과했다.
결혼을 쉽게 결심할 수 없는 시대, 시청자들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판타지 대신 현실을 찾는다. 시즌4까지 만들어졌던 '하트시그널' 등 판타지 연애를 다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는 측면도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경험하기 어려운 판타지보다 현실의 나에 대입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간접 체험이 가능한 프로그램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첫 방송 뒤 기수마다 화제가 되는 SBS PLUS·ENA '나는 SOLO(솔로)'의 인기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는 솔로'에선 출연자들이 "진짜 결혼하고 싶어 나왔다"며 진정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경제적 조건부터 거주지 등 현실적 요소들을 따져가며 데이트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이원웅 PD는 "결혼을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 출연진처럼) '이렇게나 결혼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하는 의문점을 프로그램을 통해 해소할 수 있어 관심을 끄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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