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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연락은 꼭 받고 그를 찾아가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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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연락은 꼭 받고 그를 찾아가는" 의사

입력
2023.08.10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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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방전 없음' 출간한 방문진료 의원 건강의집 홍종원 대표원장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대신 큼지막한 왕진 가방을 들고 동네 곳곳을 다니는 홍종원 건강의집 대표원장이 문을 열어 나가고 있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이 의원은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 1차 의료기관으로 2019년 개원했다. 안다은 인턴기자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대신 큼지막한 왕진 가방을 들고 동네 곳곳을 다니는 홍종원 건강의집 대표원장이 문을 열어 나가고 있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이 의원은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 1차 의료기관으로 2019년 개원했다. 안다은 인턴기자

"저는 항상 스스로 실력이 없는 의사라 생각했어요. 다만 한 가지 장점을 꼽자면 제게 오는 환자의 연락은 언제라도 받습니다. 그리고 갑니다."

최근 서울 강북구 건강의집 의원에서 만난 의사 홍종원(36)씨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도중에도 계속 울렸다. 곤란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전화를 받아도 된다고 하니 고개를 살짝 돌려 전화로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자기 몸 상태를 알려주려는 환자였다.

"제 번호를 환자나 보호자들은 다 알고 있어요. 새벽 2시나 6시에도 전화를 받을 때가 있죠.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의사인 것만으로 제게 나름의 쓸모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국내 최초의 방문 진료 전문 1차 의료기관인 건강의집은 임대아파트 거주자 등 취약계층이 밀집한 번동 일대에 2019년 문을 열었다. 2018년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시작으로 이듬해 1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이 이어지면서다. 건강의집에 직접 가보니 보통의 외래 병원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접수를 돕는 데스크나 벽으로 구분된 진료실 등은 찾을 수 없었다. 공간은 말 그대로 뻥 뚫려 있었다. 그가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기다리는 의사가 아니라 왕진 가방을 들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의 집에 직접 찾아가는 방문 진료 의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강북구 건강의집 의원에서 만난 의사 홍종원씨. 그는 6월 책 '처방전 없음'을 출간했다. 안다은 인턴기자

최근 서울 강북구 건강의집 의원에서 만난 의사 홍종원씨. 그는 6월 책 '처방전 없음'을 출간했다. 안다은 인턴기자

5년 동안 건강의집을 이끌며 강북 일대의 환자를 만나온 홍씨가 올여름 자신의 경험을 담백하게 담아낸 책 '처방전 없음(잠비 발행)'을 출간했다. 그는 많은 이가 선망하는 의대를 졸업하고도 경제적 윤택함을 보장하는 진로인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 아닌 방문 진료를 선택했다. 여느 의사들과 다른 길을 간 그가 진료실 밖에서 고민하고 경험한 건강과 돌봄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써냈다. 그는 2019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인 파인텍 노동자들을 진료하기 위해 굴뚝 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엔 그가 진료실 밖에서 만난 독거노인, 쪽방촌 주민, 이주노동자 등의 사연도 담겼다.

"제가 성격이 좀 모난 편이에요(웃음). 의대 졸업 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인데 의사들이 선뜻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런 것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동료 의사와 간호사 2명과 함께 일하는 그의 달력은 대체로 한 달 주기로 반복된다. 그는 만성질환이 있는 환자를 한 달에 한 번 방문 진찰해 약을 처방한다. 빡빡한 정규 일정 사이 빈틈에 단발적으로 연락 오는 환자의 진찰도 소화한다. 환자 방문은 오전 9시~오후 9시에 주로 이뤄지지만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이따금 서울 중랑구, 동대문구나 경기 의정부시까지 장거리 왕진을 가기도 한다.

홍씨의 진찰은 길고 꾸준하다. 그는 초진 때 30분에서 1시간 정도 환자와 진득하게 대화를 나눈다. 5년 동안 매월 방문하고 있는 환자도 있다.

'처방전 없음'이라는 책 제목은 통상 병원 진료 후 얻는 문서인 처방전 이상으로 아픔을 둘러싸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두터워질 수 있다는 데에서 착안해 지어졌다.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그는 의원을 차리기 6년 전쯤부터 강북구에서 축제를 열고 마을사랑방을 차리며 주민들과 동고동락했다.

"저는 경제적 안정을 보고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삶의 희로애락과 마음까지 모두 포괄해서 인간의 건강을 돌보는 일이 이 직업의 본질 아닐까요."

그가 평소 들고 다니는 왕진가방은 온갖 진료 도구로 가득 차 있다. 청진기와 혈압측정기, 붕대뿐 아니라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도 소지한다. 언제 어디서든 진료 관련 문서를 작성하여 인쇄하기 위함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그가 평소 들고 다니는 왕진가방은 온갖 진료 도구로 가득 차 있다. 청진기와 혈압측정기, 붕대뿐 아니라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도 소지한다. 언제 어디서든 진료 관련 문서를 작성하여 인쇄하기 위함이다. 안다은 인턴기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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