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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배우 보호에 최선' 그 문구 뒤 현실은

입력
2023.07.1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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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정 '전교생의 사랑'(문학과사회 2023년 여름)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영화 '마틸다'(1996) 주연을 맡았던 마라 윌슨은 최근 자신의 성장회고록을 내면서 성희롱 등 위험에 노출됐던 아역 배우 시절에 대해 알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6년 개봉한 영화 '마틸다'에서 깜찍하고 당찬 소녀 '마틸다'를 연기해 세계적 인기를 누린 영화배우 마라 윌슨(35). 25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 윌슨이 밝힌 아역배우의 삶은 밝지만은 않았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린 자신을 성적 대상화하는 어른들의 발언을 수없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안타깝게도 이는 윌슨만의 경험이 아니다. 어린 연기자가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장면을 촬영하는 일도 종종 문제가 된다. '아역배우 보호에 최선을 다했다.' 영화·드라마 속 이런 내용의 알림 문구들을 믿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

계간지 문학과사회(2023년 여름)에 실린 박민정의 '전교생의 사랑'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아역배우 출신인 '민지'는 어린 시절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세리'를 우연히 다시 만나 공유하고 있던 상처를 꺼내 보게 된다. 소설은 서로를 맞잡은 힘으로 치유해 가는 시간을 그렸다. 동시에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 주변의 민지와 세리를 위해 어른으로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화자인 민지는 1990년대 초 아역배우로 활동했다. 한때 최고의 아역상을 받기도 했지만, 열다섯 살이 된 해 민지는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세리와의 역할 경쟁에서 밀린 게 계기. 민지는 그 후로는 과거의 '천재 아역 배우'를 사람들이 알아볼까 신경 쓰며 살아간다. 자신의 실패를 증명하는 일처럼 느껴져서다. 그러다 20년 만에 대학로에서 세리와 우연히 재회한다. 배우가 아닌 작가와 연출가로. 세리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연출로 전공을 바꾸고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박민정 작가 ⓒ김보리 문학과지성사 제공


세리와의 만남으로 민지는 덮어둔 기억을 꺼내게 된다. 영화 '전교생의 사랑'과 이제는 고인이 된 홍 감독의 존재. 민지는 여자아이의 몸으로 바뀐 남자아이 역을, 세리는 그의 단짝 친구 역을 맡았다. 그 영화로 상도 받았지만 정작 민지는 생각한다. "고작 열다섯 살 나이에 (그 영화를) 촬영한 사람이라면 어딘가 망가져 있을 터"라고. 혹시라도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망가진 것"이라고. 브래지어를 들춰보며 가슴을 만지는 장면에서 세리와 "사랑하는 장면"까지 원하지 않는 연기를 했던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청소년 관람 불가'였던 자신의 출연작을 성인이 된 후에도 보지 않은 이유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는 세리와 함께 이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고전의 재해석'이란 주제로 평론가와 관객이 대화하는 행사에 이 영화가 상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홍 감독의 연출방식이 아역배우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영화를 정말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제는 정말 묻고 싶었던 둘. 상영회를 통해 서로를 의지하며 한 발 더 나아간다.

소설에서 민지와 세리를 보듬어주는 어른은 '영주 선배님'뿐이다. 무리한 장면을 고집하는 감독에게 반론을 제기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배우 이후의 삶도 꾸준히 지지해 준다.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반짝이는 아이들. 그들이 어른들의 세상에서 소모되지 않게 지키려면, 촬영 현장은 물론 관객석에도 수많은 영주 선배님 같은 존재가 필요할 테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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