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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개인 선택 아닌 사회적 죽음…코로나19처럼 국가가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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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개인 선택 아닌 사회적 죽음…코로나19처럼 국가가 대응해야”

입력
2023.07.16 07:00
수정
2023.07.1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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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예일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조교수 인터뷰
"자살도 국가가 막는다는 인식 전환 필요"
"나도 자살로 친구들 잃어...공개가 곧 힘"
"감추지 말고 어릴 때부터 이야기해야"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가 11일 서울 마포구 평화나루도서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코로나19 때 정말 열심히 방역했잖아요. 자살은 왜 그렇게 대응 안 하나요. 코로나19보다 자살로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잃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나종호 미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맹위를 떨쳤던 2021년 코로나19 국내 사망자 수는 5,030명. 같은 해 국내 자살 사망자 수는 2배가 넘는 1만3,352명이었다.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1위다. 하지만 자살예방이 국정 1순위에 오른 적은 없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바깥에서 한국을 보며 가장 의아했던 건 사회의 무감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자살률, 전쟁 트라우마 겪는 미국 전역 군인과 비슷"

동화를 바탕으로 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일본 자살예방광고. 일본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살예방 교육을 하고, 창의적인 자살예방 광고를 만들어 일상적으로 자살을 마주하게 한다. 유튜브 캡처

그는 일본 얘기부터 꺼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자살률이 급증한 일본이 맨 처음 한 일은 국가가 자살을 ‘사회적 죽음’으로 규정한 것이었다. 일본은 2006년 총리실 산하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살예방기본법도 만들었다. 나 교수는 “국가가 심리지원 등의 역할을 하고, 재미있고 창의적인 자살예방 광고를 만드는 등 자살을 양지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약 10여 년 후 일본 자살률은 30% 넘게 감소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미국의 자살 고위험군은 전역 군인. 매일 2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체 인구 대비 자살률로 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치다. 나 교수는 "전쟁터에 다녀와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는 전역 군인과 한국인들의 자살률이 비슷하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이라고 했다. 미국 보훈부는 2017년 자살 예방을 정책 1순위로 선포,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자살 충동으로 입원한 적이 있는 군인 등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의사나 사회복지사를 만나도록 하는 등 체계적으로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지난 20년간 전사자보다 4배나 많은 3만 명이 참전 후 자살했다는 2021년 KBS 보도. KBS 보도 캡처


"자살은 극단적 선택 아냐...국가 투자 늘려야 자살률 떨어져"

자살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일본과 미국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자살예방에 나서고 있다. 나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자살을 ‘현대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 중 하나’라고 규정했듯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코로나19처럼 자살 역시 국가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해온 것도 그래서다. 자살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지 말자는 것. 우울증을 앓는 이들이 자살에 이르는 것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며, 개인의 선택으로 명명하는 순간 사회의 책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자살 용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돼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의 '자살 위기극복 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극단적 선택' 용어 사용 자제를 당부했다. 미국이 2005년 '자살을 저지르다(commit suicide)'라는 표현 대신 '자살로 사망하다(die by suicide)'로 용어를 수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국가적 투자가 필수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예방 관련 예산은 451억 원. 일본은 우리보다 16배나 많은 7,510억 원(2017년 기준)이 넘는 예산을 매년 자살 예방에 쓴다. 미국 보훈부는 올해 자살 예방에 6,500억 원, 정신 건강 서비스에 18조 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미국 정부는 또 지난해 1조원 이상을 들여 정신건강 응급전화 '988'을 새로 개통했다. 연중무휴 전국 어디서나 988만 누르면 정신건강 상담원과 연결된다. 나 교수는 "한국 자살률이 계속 1위인 것은 국가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산을 10배 넘게 증액하지 않는다면 자살률을 줄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는 2005년 알버타 정신 건강 회의에서 자살을 표현하는 용어를 '자살을 저지르다'(commit suicide)에서 '자살로 사망하다''(die by suicide)로 수정했다. 나종호 교수 제공


펠프스 "우울증 공개가 금메달보다 더 큰 힘 줘"

나 교수가 자살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개인적 경험도 영향을 줬다. 나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다닐 때인 20대에 학부 선배를, 미국에서 레지던트를 할 때인 30대에 동기를 자살로 잃었다. 그는 11일 본보 인터뷰 전 자살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 경험을 공개했다. 어릴 적부터 우울증을 앓아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정신과 의사가 되려 했던 그의 동기 이야기를 할 때는 슬픔에 목이 메 강연이 중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살을 공개할 때 사회가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정신질환과 자살에 대한 낙인이 줄어드는 추세다. 그 시작이 '공개'였다. 세계적인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는 선수 시절 우울증을 앓아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2018년 밝혔다. 그는 "대중에게 우울증을 앓았다는 사실을 공개한 후 올림픽 금메달 획득 때보다 더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우울증으로 투병했던 미국 배우 드웨인 존슨도 같은 해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며 "중요한 것은 공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많은 격려를 받았다. 나 교수는 “강인함의 상징인 펠프스와 존슨의 고백이 미국 사회 변화에 굉장히 큰 힘이 됐다”며 “이후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살 유가족들의 TED(테드) 강연이 많아지는 등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거리에 수영 금메달리스트 마이클 펠프스가 우울증 치료를 권하는 공익 광고(왼쪽)가 게시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우울증 공개의 중요성을 강조한 배우 드웨인 존슨. 온라인 캡처

자살에 대한 침묵은 사회적 낙인을 강화한다. 자살을 터부시하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 역시 이 침묵 깨트리기다. 나 교수는 “우리는 자살에 대해 너무 이야기하지 않아서 아이든 어른이든 문제가 생겨도 도움 받을 생각을 안 한다”며 “최근 10~20대의 자살률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어릴 때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누구나 정신적으로 힘들 수 있고, 힘들 땐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미국에서는 자살 생각이 떠오르면 응급실에 가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나 교수는 "자살에 대한 낙인이 옅어지면 도움을 요청하기 쉬워지고, 결국 자살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줄어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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