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에게 약자 '외출 금지' 부탁 의도
재난문자, 접근성·기준 차별 논란 반복
"이동권 제한 대신 안전 환경 마련해야"
전국적으로 폭우가 쏟아진 11일 오후, 밖에 나갔던 김모(22)씨는 황당한 재난안내 문자를 받았다. 행정안전부가 발신한 문자는 “비가 많이 오고 있으니, 어르신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외출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지체장애가 있는 김씨는 13일 “누구한테 장애인의 외출을 막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사려 깊지 못한 정부 재난문자를 향한 성토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①노인과 장애인이란 특정 계층을 겨냥해 ‘외출 금지’를 요구한 데다 ②당사자가 아닌 보호자에게 ‘관리’를 당부하는 내용으로 읽힐 여지가 큰 탓이다. 서울 시민 김민규(29)씨는 “취약계층도 비가 많이 와도 부득이 외출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텐데, 이동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행안부 문자는 보호자에게 노인, 장애인 등 재해 약자의 외출을 제지해 달라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해당 문자를 작성한 행안부 관계자는 “최근 폭우 때 ‘일반인’이었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몸이 불편해 급류에 휩쓸린 분이 있었다. 그래서 강하게 (외출 자제를) 부탁해야겠다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문구는 앞으로 금지 대신 ‘자제 요청’으로 수정하겠다고 했다.
그간 재난문자 차별 논란은 여러 지점에서 반복돼왔다. 피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속성상 특히 재해 취약층에 효과적으로 전달돼야 하지만, 줄글 안내가 고작이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시ㆍ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재난문자’와 ‘수어 영상 재난문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만 제공하고 있다.
문자 발송 기준을 두고 잡음이 인 적도 있다. 올해 1월 서울교통공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와 관련해 보낸 재난문자가 대표적이다. 행안부의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르면, 지자체는 관할 구역에서 발생한 자연재난 또는 사회재난에 한해 문자를 송출하도록 돼 있어 “장애인 인권활동 규탄에 행정력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주의를 당부하는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당국이 약자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방식보다 안전한 보행을 담보하는 환경 조성에 더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올해 2월 보건복지부가 낸 보고서를 보면, 국가기관이나 지자체, 공공기관 등 조사 대상 2,194곳의 절반 이상(57.6%)이 재난 발생 시 장애인 대응ㆍ대피 계획을 마련하지 않았다.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신우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간사는 “지난해 물난리로 서울에서 발달장애 일가족이 숨졌고, 화재로 인한 장애인 사망도 증가세”라며 “장애인의 재난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예방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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