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출신의 세계적 작가…향년 94세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 참여로 탄압
프랑스 망명 후 2019년 국적 회복
대표작 '농담' '불멸' '무의미의 축제' 등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알려진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가 별세했다. 체코 공영방송은 12일(현지시간) 쿤데라가 이날 향년 94세 일기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프란츠 카프카,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 문인으로 꼽힌다. 매년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이름을 올렸으나 끝내 수상하지 못했다.
1929년 체코 브루노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작곡과 영화를 공부했다. 공산체제였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시와 극작품을 쓰며 프라하의 고등영화연구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첫 소설 '농담'(1967)과 희곡 '열쇠의 주인들'(1962)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농담'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즉시 프랑스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어판 서문에서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루이 아라공은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한 작가"라고 쿤데라를 평가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963년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프라하의 봄'은 쿤데라의 삶을 바꿨다. 운동 참여로 모든 공직에서 해직 됐고, 그의 작품은 압수당하고 금서가 됐다. 비밀 경찰국의 위협 섞인 감시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1975년 프랑스로 떠난다. 1979년 박탈당한 국적은 2019년에서야 회복할 수 있었다. 망명 이후에는 르네 대학과 파리 대학 등에서 문학 강의를 했다.
혼란한 시기의 경험은 작품으로 승화됐다.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은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에 짓눌린 사람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로, 인간의 속물근성, 실존적 생존에 관한 문제 등을 파고든다. 폭넓은 해석이 가능한 이 철학적 작품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순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외에도 '무의미의 축제' '향수' 등을 내면서 탁월한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았다. 쿤데라의 작품들은 기성의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1990년에 출간한 '불멸'을 마지막으로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작품을 썼다. 소설 '느림'(1995)은 프랑스어로 집필한 첫 작품이다. 망명 직후에는 "프랑스를 작가로서의 조국으로 선택"했다고 밝힌 적도 있으나 이후 프랑스 문단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쿤데라는 최근 30여 년 동안 언론 등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 끊임없이 공산주의자인지, 반체제 인사인지 등 정치적 색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온 그는 언제나 자신을 "소설가"라고 답했다. 실제로는 소설은 물론 시, 희곡, 평론 등을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활동했다. 메디치상, 클레멘트 루케상, 체코작가상, 카프카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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