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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순간 기억은 완성되고, 소설은 삶을 넘어선다

입력
2023.07.14 07: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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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달력 뒤에 쓴 유서'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민병훈의 '달력 뒤에 쓴 유서'의 첫 문장은 ‘아버지는 오래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의 진정한 시작이 여기부터라고 생각한다. ‘왜 쓰는가. 왜 쓰려고 하는가.’

소설은 학창 시절 자살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내내 회피하다가 끝내 희미해져 버린 그 시기를 마주하려는 소설가의 이야기다. 소설 속 소설가는 그 시기를 선명하게 기억해 소설로 쓰고자 한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그 집으로 떠난다. 그는 관광객처럼 주위를 둘러보지만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느낌 뒤엔 기억이 밀려오고 기억 뒤엔 문장이 다가온다.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려 한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음독을 시도했던 집에도 가보고, 고향사람도 만나본다. 그리고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기억을 복원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아버지에 대한 애도? 그 시기의 자신에 대한 위로? 그러나 그는 ‘슬픔과 애도로 가득했던 시간을 이미 지나왔다’고 소설 속에서 진술했다.

소설 속엔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되어 ‘여러 어려움을 이겨 내고’ ‘사장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 나온다. 그는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는데 자서전이 아닌 자전소설이어야 한다고 우긴다. 어째서 소설인가. 어째서 소설의 형식이어야만 하는가.

달력 뒤에 쓴 유서·민병훈 지음·민음사 발행·164쪽·1만4,000원

민병훈의 '달력 뒤에 쓴 유서'는 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무한한 질문이다. 끝없이 같은 질문을 하는 아이처럼, 그는 그 질문을 멈추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는 기다리는 듯 보인다.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을. 문장이 떠오르는 순간 놀랍게도 기억이 완성된다. 그러니까 민병훈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거나 ‘그저 받아쓰기처럼 쓰’려는 것이 아니다. 쓰기가 먼저고 기억이 나중이다.

그렇다면 민병훈은 왜 써야만 하는가. 그것이 왜 소설이어야만 하는가.

시간은 살아있는 자만이 체감하는 것이다. 죽은 이들에게선 시간의 개념을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진다. 죽은 이들의 시간은 멈췄고 그들의 달력을 넘기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유서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남은 자들이 읽는 글이다.

그러니까 달력 뒤에 쓴 유서는 정말이지 남은 자들을 위해 쓰인, 살아있는 자들에게 읽힐, 오롯이 살아남은 자들만의 글이다. 그러니 달력 뒤에 적힌 유서를 발견한 사람, 그러니까 남은 자는 글쓰기의 숙명을 받아들인다.

민병훈이 달력 뒤에 적힌 유서를 발견한 사람이기 때문에 쓴다. 쓰기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과 소설은 전복된다. 죽음조차 그저 소설의 일부분이 된다. 소설은 어느새 삶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된다.

그러니 민병훈의 이번 소설은 자전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쓰기에 대한 예찬이자 소설에게 보내는 연서가 아닐까 하고 감히 짐작해 보는 것이다.

민병훈 작가. 작가 제공


송지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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