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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시험의 병폐들

입력
2023.07.12 00: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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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식 시험. 게티이미지

객관식 시험. 게티이미지

지난달 프랑스 대학생이 왔는데, 킬러 문항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진땀은 객관식 시험이 뭔지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빠졌다. 스무 살이 넘도록 객관식 시험을 한 번도 쳐보지 못했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는 의대, 공대 등 극히 예외를 제외하면, 객관식 시험을 평생 보지 않는다고 한다. 수능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도 모든 과목이 논술형으로 출제된다.

객관식 시험방식은 학생들의 생각이 하늘 저 높이 활활 날게 하기보다는 일정한 지붕 밑에 제한하는 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객관식은 정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두어 번 꼰 답지 중 출제 의도를 파악하는 '눈치'도 기른다. '다음 중 옳은 것은?' 같은 문제에서, 사실 100% 옳은 답지나 100% 틀린 답지는 없는 경우가 많은데, 출제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골라야 한다. 미술로 비유한다면 마치 여러 그림 중 사진과 같이 똑같은 그림을 가장 잘 그린 그림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는 파란색에 노란색을 섞으면 녹색이 된다는 것과 같이 단순화된, 요약된 진리의 세계를 상정한다.

에세이식 주관식 시험은 정답을 전제할 필요도 없고 사고 과정을 중시한다. 만물에 정답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 있을 수 있다고 보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컨대 '왜 인간사회에 전쟁은 끝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에 주체적 사고를 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실보다는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색깔로 그리는 것과 같다. 미술로 치면 노란색, 파란색에도 여러 가지가 있고, 이것을 섞으면 녹색도 수십 가지가 나올 수 있다는 다양성이다.

과학적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인간사회의 많은 일들이 정답이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뉴턴, 아인슈타인, 양자역학 등의 학설 변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연과학적 지식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객관식 시험으로 단련된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여전히 '객관식적'으로 학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기도 한다. 객관식을 풀기 위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인터넷 강의에 익숙해져 있는데, 대학의 강의에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명 교수의 강의가 이들의 눈에는 체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강의하는 성의 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객관식 시험은 일정 수준에 미달하는 사람을 걸러내는 용도로는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수한 상위그룹을 변별해내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킬러 문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추격경제 시대에 선진국의 지식을 요약적으로 받아들여 빨리 습득시키는 것이 목표였던 과거에는 객관식 시험이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나름대로 주관식적인 사고를 해야 창의력이 길러지지 않을까?

초중고 12년 동안 객관식 시험으로 길들여진 학생들을 대학에서 변화시키기는 역부족이다. 교육개혁은 프랑스와 같이 객관식 시험을 이 땅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마치 백지를 주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듯이, 초중고 교육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상상력을 길러주는 주관식 사고를 가르쳐야 한다. 객관식 시험에서 벗어나 주관식 사회로 바뀌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방법일 것이다. 이공계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인문사회 분야는 그렇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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