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발전기 현대인 고독, ‘1인 가구’ 시대 공감
삽화가 출신 유화의 색감, 모더니즘 향수 자극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지난 4월 20일 개막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관람객이 두 달여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2019년 30여만 명을 끌어모은 '데이비드 호크니'전의 기록도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돼 ‘돌풍’의 원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10일 서울시립미술관에 따르면 9일 기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누적 관람객은 22만 명을 넘어섰다. 미술관 측은 같은 장소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전과 동일 기간을 놓고 비교할 때 약 2만 명 많은 숫자라며 다음 달 20일 전시 종료 때까지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호퍼전의 열기는 개막 초기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난 4월 20일 개막과 동시에 6월 말까지 티켓이 매진된 것. 반복 관람을 위해 21회 이상 전시 예매를 한 관객도 있다. 관람객 안전사고를 우려해 미술관 측은 30분 단위로 약 200명을 입장시키고 있다.
1920, 1930년대 미국 산업 발전 시기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작품의 소재와 구도가 풍요 속 빈곤을 느끼는 ‘1인 가구’ 시대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다. 그의 작품은 강렬한 주제의식 없이 도시의 풍경과 도시인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와 도시인을 통해 솔직하고 조용하게 작가의 내면을 드러낸다는 평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호퍼는 동시대에 활동한 파블로 피카소처럼 뜨겁고, 역사와 함께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내면을 그리겠다’는 자신의 선언에 충실했다”며 “당장 강렬하게 들어오지는 않지만 개인의 시선으로 그가 발견해 낸 미적인 세상이 인정받는 세상이 온 것이 인기 비결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경기 불황으로 개인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삽화가였던 호퍼가 쓴 작품 속 유화의 색감이 1920~1930년대 모더니즘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해석도 나온다. 단순하고 일상적인 색이 요즘 사람들에게 정서의 안정을 준다는 것이다.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호퍼의 그림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을 빛과 그림자를 잘 쓴 슴슴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며 “화려하고 자극적인 미디어·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반대로 그가 잡아낸 일상의 순간이 편안하지만 신선한 매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전시에 ‘나이트호크’를 비롯한 호퍼의 대표작이 빠진 것은 관람객 30만 명 돌파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호퍼전 예매 사이트에도 ‘대표작은 빠지고 소품과 습작만 많다’는 아쉬움을 표시한 게시물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호퍼 작품을 위주로 한 것”이라며 “(미술작가로 활동하기 전) 삽화가로서의 활동이나 습작도 다수 포함돼 65년 호퍼의 작품 활동을 긴 호흡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