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일손 부족 해결 위해 도입, 잠적 사례 잇따라
입국 심사 강화, 불법 브로커 개입 막을 대책 필요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이 입국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활개 치는 불법 브로커 탓에 농가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농촌 지역에서 일하기 위해 한정된 기간(2~5개월) 국내에 입국해 일하는 외국인 인력을 말한다. 농가의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입국 과정에 불법 브로커가 개입해 계절근로자들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브로커 개입→미등록 체류자 '악순환'
9일 한국일보는 과거 한국에서 계절근로자로 일한 적 있는 헨리(51)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법 브로커 난립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현재 필리핀에 거주하는 그는 불법 브로커를 통해 국내로 들어와 전남 해남에서 5개월간 일한 경험이 있다.
헨리에 따르면, 불법 브로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접근한 뒤 지원서와 근로계약서, 수수료 명목의 대출 각서 작성을 요구했다. 이후 입국 심사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국내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맺은 외국 지자체에 거주하는 주민들만 계절근로자로 일할 수 있지만 검증 절차는 전무했다. 헨리가 거주하던 필리핀 카비테주(州)의 한 도시는 해남군과 어떤 업무협약도 맺지 않은 상태였지만 아무 문제 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계절근로자가 미등록 체류자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점은 또 있다. 임금 중 상당수를 불법 브로커 몫으로 떼어가는 착취 구조다. 헨리만 해도 해남에서 한 달에 4만5,000페소(약 100만 원)를 받았는데 절반이 훨씬 넘는 2만7,500페소(약 65만 원)를 브로커에게 줘야 했다. 그는 “숙식비 등 각종 비용을 또 공제하면 사실 손에 쥐는 게 없다”며 “돈을 벌기 위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도 단가가 낮은 농촌보다 건설 현장 등으로 이탈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입국 심사 강화 등 제도 개선 필요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 배정된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2만6,788명으로 역대 최대 규모여서 미등록 체류자 양산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실제로 최근에 무단이탈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충북 보은군에선 지난달과 이달 연이어 베트남 출신 계절근로자 7명, 6명이 각각 잠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계절근로자 제도 시행 이후 발생한 무단이탈자는 지난해 640명으로 전년(316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2017년 18명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35배나 치솟았다.
계절근로자들의 무단이탈은 영농 차질로 이어진다. 일손이 부족한 농가들은 오랜 기간 기다린 끝에 힘들게 구한 인력들이 사라져 버리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법무부가 무단이탈이 많은 지자체엔 계절근로자 배정에 불이익을 주는 등 반복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대책을 실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지자체에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의 계절근로자 담당 공무원은 1, 2명에 불과한데 전부 관리, 감독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입국 과정 심사를 강화하고, 불법 브로커 개입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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