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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주워도 3000원 고작"... 불황에 폐지값 '반토막', 리어카 놓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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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주워도 3000원 고작"... 불황에 폐지값 '반토막', 리어카 놓는 노인들

입력
2023.06.30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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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매입가 ㎏당 80~100원→30~40원
국내·외 불황 원인... 망가진 선순환 고리
소비 부진 장기화 땐 '수거 대란' 우려도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상점 앞에 폐지가 쌓여 있다. 나광현 기자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상점 앞에 폐지가 쌓여 있다. 나광현 기자

“저렇게 쌓인 지 꽤 됐어. 예전엔 서로 가져간다고 막 싸웠는데….”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상점 주인 김모(78)씨가 출입문 옆에 차곡차곡 포개진 골판지 상자 무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얼마 전만 해도 빈 상자를 가게 밖에 내놓으면,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 누군가가 금세 낚아채 갔는데 요즘엔 상황이 달라졌다. 김씨는 “꽁쳐뒀다가(숨겨뒀다가) 꼭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노인들이 다 어딜 갔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변 다른 가게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점포 인근 곳곳에 종이 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바닥 친 폐지 가격, 노인들 '의욕 상실'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 고물상에서 어르신이 수집한 폐지 무게를 재고 있다. 나광현 기자

28일 서울 영등포구 한 고물상에서 어르신이 수집한 폐지 무게를 재고 있다. 나광현 기자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거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지난 1년간 폐지 가격이 하락을 거듭한 탓이 크다. 자연스레 폐지 단가도 낮아져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며 힘들게 종이를 수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29일 환경부에 따르면, 이달 12일 기준 전국 폐지 압축상(중상)은 고물상(소상)으로부터 폐지(골판지)를 매입할 때 ㎏당 평균 70원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달 평균가(137원)보다 48.9%나 감소했다.

폐지는 노인들이 수거해 고물상에 팔면 압축상을 거쳐 제지업체(대상)로 넘어가 새 종이 상자로 재탄생한다. 각 단계마다 당연히 마진(이윤)이 붙는데, 압축상 매입가가 ‘반토막’ 나 노인들이 동네 고물상에 폐지를 넘기고 받는 돈도 크게 줄었다. 지역ㆍ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서울 고물상의 폐지 평균 매입가는 ㎏당 30~40원으로 지난해(80~100원) 절반 수준이다.

최근 1년간 폐지 매입 단가. 그래픽=박구원 기자

최근 1년간 폐지 매입 단가. 그래픽=박구원 기자

벌이가 안 되니 노인들은 리어카를 내려놓고 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살면서 5년째 이 일을 해온 60대 기초생활수급자 강모씨는 지난해 하루 폐지 400㎏을 주워 4만 원을 벌었다. 지금 손에 쥐는 돈은 고작 1만6,000원이다. 강씨는 “생활비에 보태기는커녕 간식값도 안 나온다”고 푸념했다. 마포구의 한 고물상 사장도 “하루에 20명 정도 오던 폐지 수집 노인이 절반은 사라졌다”며 “생계가 걸린 어르신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하는데 드리는 돈이 너무 적어 내가 다 죄송할 지경”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 공공비축 연장... 또 폐지 대란?

28일 경기 고양시의 한 폐지 압축상에 압축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광현 기자

28일 경기 고양시의 한 폐지 압축상에 압축 폐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광현 기자

폐지가 예전 가격 수준을 되찾으려면 경기가 나아져야 한다. 폐지를 재활용해 만드는 골판지 상자는 과일 등 먹을거리부터 의류, 전자제품 등 수많은 물품 포장에 활용된다. 소비가 활발해야 상자 수요가 늘고, 배출된 박스가 재활용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데다, 상자 포장이 필수였던 ‘비대면 거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마감과 함께 상당 부분 줄어 수요가 더 감소했다.

폐지 수거 피라미드의 꼭짓점에 있는 제지업체도 매입을 줄이는 추세다. 최근 경기 고양시의 한 폐지 압축상은 매달 최대 수천 톤의 폐지를 사가던 거래처(제지업체)가 납품량을 대폭 줄이겠다고 통보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 사업체에 가봤더니 공터에 600톤이나 되는 압축 폐지가 높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정부도 원활하지 않은 폐지 순환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말 환경부는 두 차례에 걸쳐 총 2만8,000톤의 폐지를 공공 비축했지만,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다는 업계 의견을 받아들여 당초 이달까지였던 비축 기한을 좀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2018년 ‘폐지 대란’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 당시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공급 과잉으로 국내 폐지 가격이 폭락했다. 이 여파로 폐기물 업체들이 돈벌이가 안 되는 폐지 수거를 거부해 도시 곳곳에 종이 상자가 흉물스럽게 쌓여 사회문제가 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은 폐지 소비뿐 아니라 발생도 줄어 대란 사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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