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거, 변작 등 미성년 사기 활용 늘어
죄질에 따라 나이 어려도 '전과' 남아
A(16)군은 올해 2월 한 인터넷 구직업체 공고에 귀가 솔깃했다. “간단한 심부름만 해주면 된다”며 업체는 비교적 쉬운 일거리를 제안했다. A군은 돈을 받아 전달하라는 텔레그램 지시를 받고, 특정 장소에서 현금 5,300만 원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돈을 준 사람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자였다. 경찰에 붙잡힌 A군이 범행 가담 대가로 약속받은 금액은 고작 2만 원이었다.
정부 집중단속에 10대 사기 실행 표적
10대 보이스피싱 사범이 늘고 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쉬운 아르바이트’ 유혹에 끌린 탓이다. 이들은 중국 등 외국에 있는 윗선의 지시를 받아 주로 현금 수거나 송금 등 간단하지만 잡힐 위험이 큰 일을 한다. 보상도 건당 10만 원 안팎에 불과하나, 미성년자에겐 큰돈이라 미끼를 덥석 무는 경우가 많다.
미성년 보이스피싱 사범이 얼마나 되는지 별도 통계는 아직 없다. 다만 “갈수록 전화사기 범죄에 가담하는 10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한 수사관은 27일 “수거책 얼굴이 앳되면 피해자가 의심해 과거엔 드물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미성년자가 많이 잡히고 있다”고 말했다.
사기 조직이 10대를 범행에 끌어들이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최근 정부 당국이 합동수사팀까지 꾸려 대대적인 보이스피싱 단속에 나서자 현금 수거 등 실무를 담당할 대상을 찾기 어려워졌고, 포섭이 비교적 쉬운 미성년자들에게 손을 뻗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기 과정이 세분화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단순 현금 전달에 그쳤지만, 당국의 추적을 피하려 전화번호 변작(070→010 변경) 등 활용 업무가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7월 인천에서 타인 명의 유심(USIM)칩을 공기계에 넣어 작동시키는 등 전화번호 변작 중계기를 운영ㆍ관리한 B(17)군이 검거됐다. B군은 “휴대폰 공기계를 사서 껐다 켜는 행위를 반복하면 주급 100만 원을 주겠다”는 지인의 꾐에 빠져 범죄에 손을 댔다. 이런 단순 업무로는 보이스피싱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 수 없어 청소년들이 범죄에 쉽게 발을 담글 수밖에 없다.
"불우 청소년 가담 막을 안전망 필요"
뒤늦게 후회해도 처벌은 가볍지 않다. 대부분 가정법원에서 소년부 재판을 받는데 통상 소년원에 송치되는 9호(단기), 10호(장기) 처분이 내려진다. 해당 처분은 다행히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죄질이 불량하면 형사부 재판을 받고 전과가 남는 사례도 있다. 금융위원장 직인까지 위조해 수억 원을 뜯어낸 C군은 2021년 장기 2년, 단기 1년 8월 징역형을 선고받고 소년교도소에 수감됐다. 미성년 사건을 많이 다룬 법무법인 에스의 박동찬 변호사는 “보이스피싱은 서민 대상 범죄라 법원이 수거책도 엄벌하는 추세”라며 “심부름 정도로 알고 가담했더라도 절대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특히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표적이 되기 쉬어 교육당국 등 주변의 지도가 필요하다. 2021년 D(18)군은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어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에 전화사기에 발을 들였다. 4,00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수고비로 손에 쥔 돈은 90만 원뿐이었다. D군처럼 10대가 개입된 보이스피싱 사건 판결문에선 “불우한 가정환경”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환경이 좋지 않은 청소년 사범을 사회에서 격리하는 결과적 처방에 의존하지 말고, 이들을 정서적으로 보듬을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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