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육상의 꽃' 마라톤
"자신감·건강 회복에 도움"
울트라마라톤· 페이스메이커 등 또 다른 도전도
3일 오전 7시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도림천 공터에 약 10명의 어르신들이 모여 몸을 풀었다. 간소한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이들의 가슴팍에 ‘칠마회’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칠순 마라톤 동호회’의 줄임말이다. 70세 이상(여성 60세 이상)·풀코스 1회 이상 완주한 마라토너들이 모인 칠마회는 매주 도림천변을 달린다. 조깅 수준이 아니다. 한국마라톤TV가 매주 수·토·일요일과 공휴일에 여는 '도림천 둘레길 마라톤대회(공원사랑마라톤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해 기록을 재가며 실전 마라톤을 소화한다.
칠마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재연(86)씨는 2004년 환갑이 넘은 나이로 마라톤에 입문한 뒤 777번이나 42.195㎞를 뛰었다. 지난해에도 85세의 나이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에게 첫 풀코스 완주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장씨는 “당시 하프마라톤 2회를 뛴 경험밖에 없던 내가 입문 8개월 만에 풀코스에 도전했다”며 “초반에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30㎞를 넘어서며 한계를 느꼈고, 결국 40㎞ 지점에서 주저앉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도착지점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남은 2㎞를 뛰었고, 4시간 19분 29초의 기록으로 첫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장씨는 “두 손을 번쩍 들며 도착점을 지난 후 눈물을 쏟아냈다”며 “당시의 성취감과 자신감이 700번 넘는 풀코스 완주로 나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이는 장씨뿐만 아니다. 외환위기(IMF) 한파가 불어 닥친 1998년 마라톤에 입문한 김용석(80)씨는 “당시 약 35년간 다니던 직장이 존폐 위기에 몰렸는데, 모든 직원들이 회사를 살리자는 의지를 담아 ‘다시 뛰자’는 슬로건하에 마라톤을 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비록 몇 년간 이어진 구조조정 탓에 직장에서는 밀려났지만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2000년 10월 첫 풀코스에 도전한 후 큰 성취감을 느낀 그는 2020년 6월 77세의 나이로 1,000번째 풀코스 완주를 달성했다. 지구 한 바퀴(약 4만㎞)를 넘게 달린 셈이다. 김씨는 “1,000회 평균 기록이 3시간 54분 23초”라며 “우리나라에서 풀코스 1,000회 평균 서브4(4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기록한 사람은 아마 내가 최초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칠마회 회원들은 마라톤을 통해 건강도 회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진우(76)씨는 “1999년 마라톤 입문 당시 고혈압·고콜레스테롤 등이 있었는데 마라톤을 하면서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전했다. 가족력으로 35년간 당뇨병을 앓았다는 육용국(72)씨도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는 인슐린 주사를 맞을 정도로 증세가 심했는데 마라톤으로 완치됐다”고 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달리기를 시작한 이들은 늦깎이 마라토너들의 모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하나 둘 칠마회에 가입했다. 2007년 3월 회원 4명으로 발족한 칠마회는 같은 해 7월 회원 7명으로 정식 창립됐고, 현재는 40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동호회로 성장했다. 그만큼 달리기를 멈추고 싶지 않은 노년층이 많다는 의미다.
시니어 마라토너들은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또 다른 도전에 나서기도 한다. 육씨는 “칠순이 넘었는데도 이 모임에서는 내가 막내”라며 웃은 뒤 “막내로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100㎞를 넘게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울트라마라톤은 통상 오후에 출발해 16~18시간 밤을 새워 달리는 운동이다. 육씨는 올해에도 4월 청남대울트라마라톤대회, 5월 대전한밭벌울트라마라톤대회 등에 참가했다.
칠마회 최고기록 보유자 중 한 명인 최남수(77·3시간 5분 18초)씨는 국내 최고령 페이스메이커다. 그는 “마라톤을 하면서 얻은 게 많다고 느껴 65세 때부터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120회 정도 페이스메이커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도 100회 단위 기념행사를 하는 러너들이 페이스메이커 요청을 해오는데, 그럴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한다”며 “봉사활동을 나가서 입상까지 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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