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수원 영아 살해 사건 공통점 3가지]
①여러 명의 자녀 살해...임신거부증?
②냉장고에 사체 장기 보관...보안유지?
③남편 범행 관련성 부인...다른 자녀 양육?
"수원 영아 살해 사건은 2006년 서래마을 사건과 판박이다. 남편이 아내의 범행을 몰랐다는 주장을 믿기는 곤란하다."
갓 태어난 자녀를 죽이고, 냉장고에 수년간 보관해 온 '수원 영아 살해' 사건을 접한 전문가들은 17년 전 서울 방배동에서 발생한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사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또, 증거를 인멸하려는 범죄자와 달리 왜 오랫동안 냉장고에 보관했는지, 살해 동기가 엄마의 주장대로 경제적인 이유라면 왜 두 차례나 출산해 범행을 반복했는지 등 일반인들이 선뜻 이해하지 못한 의문점에 대해 "피해자가 자녀라 '양가(兩價)적인 감정이 반영되고, 범행 동기가 꼭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범행 가담이 뒤늦게 확인됐던 '서래마을 사건'처럼, 이번 수원 영아 살해 사건도 남편 범행 가담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전문가들이 서래마을 사건을 떠올린 건 ①여러 명의 자녀를 살해하고, ②냉장고에 시신을 숨겼다 뒤늦게 들통났으며, ③남편의 범행 관련성 부인 등 여러 공통점이 있어서다.
수원 영아살해 사건은 감사원의 보건당국 감사로 드러났다.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가 안된 사례 중 하나인 해당사건을 통보받은 수원시가 현장 조사를 나섰다 거부당했다. 수원시는 수사 의뢰(8일)를 했고, 경찰이 아이를 낳은 A씨 아파트를 압수수색(21일)해 영아 시신을 발견했다. A씨는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아기를 출산한 직후 살해해 자택 내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사실을 자백했다. 이미 남편 B씨와 사이에 딸 2명(12세, 8세) 아들 1명(10세)을 양육해 온 A씨는 경찰조사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 임신하게 되자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은 "낙태한 줄 알았다"며 아내의 살해 및 유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6년 서래마을 사건과 판박이
2006년 발생한 서래마을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프랑스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장 루이 쿠르조씨가 자기 집 냉동고에서 숨진 아이 2명의 시신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자동차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프랑스에서 아내, 아들 2명과 휴가를 보내다 업무 차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프랑스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국립과학수사원의 유전자(DNA) 검사 결과, 신고했던 쿠르조씨가 영아 2명의 친부로 드러났다. 그 사이 쿠르조씨는 프랑스로 출국했지만, 국과수는 쿠르조씨 집에 있던 칫솔, 귀이개, 빗 등에서 나온 유전자를 추가 분석해 쿠르조씨의 아내가 숨진 영아들의 친모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용의선상에 오른 부부는 "한국의 DNA 검사를 믿을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자국 기관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DNA 검사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현지서 긴급 체포됐다. 결국 아내가 "피임에 실패해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어 출산한 뒤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2002년과 2003년에 차례로 태어난 영아들을 목졸라 살해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부부가 한국에 오기 전 영아 한 명을 더 살해한 사실도 프랑스 당국 조사로 드러났다.
놀라운 건 두 사건 모두 자녀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뒤 시신을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한 사실이다. 살인범이 통상 시신을 인적이 드문 외딴 곳에 묻거나 훼손하는 방법 등으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영아 시신을 왜 냉장고에?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3일 통화에서 "일밤 범죄자들은 처음부터 증거를 인멸하려고 장비를 준비하거나 정유정처럼 시신을 훼손할 수도 있겠지만, A씨는 범죄자이면서도 친모라 (피해자인) 아이를 아무데나 묻거나 유기하기도 그렇고 (차마 훼손하지 못한)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며 "친모는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한 행위를) 잔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신을 바깥 어딘가에 유기했다면 언젠가 들통나 수사가 시작됐겠지만, 집 안에 갖고 있으면 끔찍해서 그렇지 보안 유지만큼은 확실하다"며 은폐를 중시한 점을 꼽았다.
그렇다해도 매일 사용하는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하는 행위는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오 교수는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관성의 법칙'과 같다"고 했다.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한 채로 밥 먹고 TV 보며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 처음엔 죄책감을 느끼거나 심리적으로 불편·불안했겠지만, 계속 지내다 보면 무뎌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A씨가 범행동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내세운 점을 100% 믿기는 곤란하다는 점도 공통으로 지적됐다. 이 교수는 "영아살해 사건의 동기는 보통 ①산후우울증이나 임신거부증 ②경제적인 어려움(양육 부담) ③남편과의 불화 또는 그것을 해소하려는 차원 등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며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에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미혼모가 저지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수원 사건은 남편도 있는데다 1년 사이에 두 차례나 범죄를 저질렀다"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특별한 사유가 있을 수도 있어 남편과의 관계가 괜찮았는지, 산후우울증이나 (서래마을 사건처럼) 임신거부증 가능성도 조사해야 된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를 2명이나 살해?
이웅혁 교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서래마을 사건의 원인으로 임신거부증이 제기되서다. 당시 범행이 한국에서 벌어졌으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프랑스인이어서 사건을 조사했던 프랑스 검찰은 범인인 친모에게 살인죄에 해당하나 '임신거부증'이라는 심각한 정신병으로 인한 범행임을 감안해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최종적으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친모는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4년만에 가석방됐고, 이후 남편인 쿠르조씨는 임신거부증과 영아 살해에 대한 책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에도 번역돼 나왔다.
오 교수도 "(키우는 자녀가 3명이나 되니까) 경제적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가 전부라 믿을 수는 없고, 함께 사는 남편이 '아내가 낙태한 것으로 알고 범행을 몰랐다'는 취지로 한 진술도 신뢰하기 어렵다"며 남편의 범행 공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서래마을 사건에서도 남편이 처음엔 아내의 범행을 전혀 모른다고 했으나 프랑스 당국의 조사에서 남편도 범행을 인지했던 걸로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아내 범행 정말 몰랐나?
부모가 양육해온 나머지 세 아이를 위해서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3일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에서 "(만약) 부모가 공모해 두 명의 영아를 살해한 경우라면, 나머지 아이들에 대한 친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둘 중 한 명만 책임을 지고, 한 명은 나머지 아이들을 돌보자고 사전에 말을 맞췄을 수도 있다"며 "일단 (범행) 동기, 그 과정 중 아버지의 역할 부분을 좀 더 분명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임신거부증 가능성에 대해서는 오 교수는 "수원 사건 친모의 임신거부증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낮다"고 이웅혁 교수와 의견을 달리했다. 이수정 교수는 "일부 종교는 낙태를 못하게 하는 종교도 있다. (서래마을 사건처럼)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사건이 벌어진 건지, 아니면 종교적 신념에 기인해서 출산할 수 밖에 없는 여지가 있었는지"라며 종교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런 부분은 조사가 돼 있지 않아 이유를 정확히는 설명할 수 없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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