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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차단술, 신경을 마비ㆍ파괴해 통증을 없애는 치료법?

입력
2023.06.21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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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살면서 몸이 아픈 통증을 피할 수 없다. 통증은 외부 자극으로 몸이 충격을 받거나 조직이 손상되면서 나타난다. 통증은 이런 위험을 감지해 회피하거나 몸의 이상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하는 경고 시스템인 셈이다. 이처럼 통증은 몸이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손상 조직 회복됐는데 통증 지속된다면 치료받아야

그러나 외부의 유해 자극이 사라지고 손상된 조직이 회복됐는데도 통증이 여전히 지속된다면 이때에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해야 한다. 특히 중등도 이상 심각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통증을 전달ㆍ인지하는 신경계 자체가 변하면서 난치성 통증으로 악화한다.

이 같은 ‘만성 난치성 통증’은 불안ㆍ우울ㆍ수면장애 등 정신적 문제를 일으켜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기에 조기에 통증 원인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치료할 필요가 있다.

몸에 유해 자극이 가해지면 몸속 ‘통증 수용체(nociceptorㆍ감각신경의 축삭 말단에 있는데, 상처나 상처를 낼 수 있는 자극을 감지)’가 자극돼 전기적 통증 신호가 만들어진다. 통증 신호는 뇌 척수신경계에 전달되면서 다양한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돼 중추 감작(感作·자극에 대한 민감도 증가)을 초래해 통증을 더 쉽게 수용하는 구조로 바뀌어 만성 통증으로 된다.

그리고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혈관 수축과 병변의 혈류 감소를 일으켜 몸의 회복을 방해하거나 자율신경계의 조화를 깨뜨린다. 이 때문에 혈압이나 맥박이 바뀌고, 식은땀·구역구토 등과 같은 증상이 생긴다.

위암ㆍ간암ㆍ췌장염 등으로 인한 내장성 통증일 때에는 일반적인 통증을 전달하는 ‘체성 신경계(somatic nervous systemㆍ말초신경계의 일부분으로 체성 감각ㆍ골격근 운동과 관련된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계)’와 함께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어떤 경우든지 통증을 우리 뇌까지 전달하는 핵심 구조는 '신경'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통증 치료는 신경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신경차단술, 적극적 통증 치료 기법

통증 질환 치료에는 소염진통제ㆍ항우울제ㆍ항경련제ㆍ마약성 진통제 등 다양한 약물을 단독 또는 복합적으로 쓴다. 또한 통증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신경차단술(nerve block)’을 시행할 수 있다.

신경차단술은 국소마취제ㆍ스테로이드 등을 신경 주위에 직접 투여하는 중재적 치료법이다. 통증클리닉을 찾는 환자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의 하나가 신경차단술이다.

그런데 신경차단술을 한다고 하면 신경을 마취시키거나 마비ㆍ파괴해 통증을 치료한다고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다. 신경차단술은 기본적으로 국소마취제를 신경조직에 투여해 통증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통증 치료에 쓰이는 국소마취제 역할을 다음과 같다. 우선, 신경 주변으로 주입된 국소마취제는 통증의 신경 전달을 차단해 중추신경의 감작을 막아 신경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줄여준다. 둘째, 통증 부위 근육을 이완하고 교감신경을 차단해 혈류량을 늘려 병변이 빠르게 회복되도록 돕는다.

마지막으로, 신경의 감각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것 외에도 국소마취제 자체가 염증 세포 활성화를 억제해 단독 투여하거나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병변에 동시에 투여함으로써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세포 주변의 염증성 병변을 제거해 통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신경차단술을 시행할 때 투여하는 국소마취제 용량에 따라 신경 차단 정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신경 차단 목적에 따라 쓰이는 약제도 달라진다. 예컨대 수술하기 위한 것이라면 고농도 국소마취제를 신경 조직 주위에 투여해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완전 차단해 수술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한다.

반면 통증 환자들에게 신경차단술을 시행하는 것은 환자 신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게 아니라 감각신경에만 영향을 줘 통증을 줄이는 정도로 적은 용량을 사용한다.

◇신경 차단, 신경 블록, 신경 주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신경차단술은 통증 치료를 하기 위해 많이 쓰이는 치료법이다. 하지만 임상에서는 ‘신경 차단’ ‘신경 블록’ ‘신경 주사’ 등 다양한 용어로 불려 환자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만든다. 치료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적절한 용어로 통일되면 환자들도 자신이 받는 치료를 훨씬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신경차단술로 치료되는 대표적인 통증 질환으로는 대상포진과 퇴행성 척추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꼽을 수 있다. 이런 통증 질환에서는 신경조직이 손상되거나 기계적 자극으로 염증 반응이 활성화돼 통증이 생길 때가 많다.

대상포진은 감각 신경절에 잠복해 있는 수두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돼 신경절에 염증과 세포 괴사를 일으켜 극심한 통증이 생긴 질환이다. 통증이 심할수록 난치성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통증이 발생한지 사흘 이내 항바이러스 제제를 먹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능한 한 빨리 침범된 신경절 주변에 국소마취제와 스테로이드를 함께 투여해 통증과 염증 반응을 줄여 조직 회복을 돕는 것이다.

척추관협착증이나 추간판탈출증(디스크) 같은 척추 통증 질환은 주위 조직의 신경근 압박과 이로 인한 화학적 염증 반응으로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고치기 위한 대표적인 중재 치료법은 ‘경막외 차단술(epidural block)’이다.

경막외 차단술은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막(경막ㆍ硬膜) 바깥쪽 부분인 '경막 외 공간'에 국소마취제ㆍ스테로이드 제제ㆍ조직의 유착 방지제 등을 혼합 투여해 염증성 물질 활성과 분비를 억제하고 부종과 유착이 발생하는 것을 줄여 신경 손상을 막고 회복되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경막외강 접근법에 따라 바늘을 이용한 척추 신경이 나오는 ‘경추간공 차단술’이나 ‘꼬리뼈 차단술’, 카테터를 넣어 치료하는 ‘신경성형술(neuroplasty)’ 등이 있다.

신경차단술은 이처럼 치료 목적뿐만 아니라 정확한 통증 원인을 찾는 진단으로 많이 활용된다. 예컨대 영상 검사에서 다양한 부위에서 진행된 척추관협착증 환자에게 통증을 일으키는 주요 병변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국소마취제로 신경을 차단해 통증 개선 정도를 확인해 올바른 시술이나 수술이 이뤄지도록 한다.

그러나 신경차단술은 출혈ㆍ혈종ㆍ감염ㆍ신경 손상이나 약물이 부정확하게 전달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부작용을 줄이고 약물이 병변에 정확히 전달되도록 시술하기 위해 영상ㆍ초음파 장비를 실시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주사 약물 중 스테로이드 제제는 강력한 항염증 작용을 하지만 적정량 이상을 처방하면 비만ㆍ고혈압ㆍ골다공증ㆍ혈당 상승 등 심각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기에 환자 나이와 동반 질환 등을 고려해 되도록 적게 사용하는 게 좋다. 따라서 신경차단술이 필요한 통증 치료는 경험이 많은 전문가와 상의하길 권한다.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전영훈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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