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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팬덤과 나쁜 팬덤

입력
2023.06.2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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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성공, 아미를 빼고는 설명 못 해
아미, 좋은 영향력 확산시키는 모델
스스로 책임지는 아미, 정치팬덤의 귀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7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쇼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방탄소년단(BTS)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쇼가 펼쳐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토요일 해질 무렵 서울시청, 서울타워 등 서울 주요 명소에는 방탄소년단(BTS)의 상징색인 보랏빛 조명이 들어왔다. BTS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로, 축제 분위기는 주말 여의도 한강공원 불꽃놀이로 절정에 달했다. 멤버들의 연이은 입대로 활동이 중단된 ‘군백기’임에도 10주년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주말 여의도에는 40만 명의 아미(BTS의 공식팬덤)가 모였다. 외국인 아미만 12만 명이 운집했으니 “BTS 멤버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 한국에 전쟁 날 일은 없다. 글로벌 아미들이 가만히 있겠느냐”라는 농담이 객쩍은 소리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BTS가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다.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분명한 건 아미라는 팬덤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그 어떤 곳에서 볼 수 없는 강력한 조직력과 열정으로 세계를 강타했다. 아미는 방탄소년단과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한 대중문화평론가의 분석은 BTS 이해의 요체다.

실제로 BTS가 미국 시장에서 안정적 성공의 길을 개척하는 데 아미의 역할은 절대적이고 결정적이었다. BTS 미국 진출 초기, 아미는 실시간으로 가사와 영상을 영어로 번역한 뒤 이를 트위터로 공유하며 언어장벽을 낮췄다. 월마트나 타깃 같은 미국 대형유통체인에 BTS 앨범 판매를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고, 빌보드 차트 순위에 영향력이 큰 지역 방송국을 공략해 BTS의 곡을 틀어달라고 했다. 기획사가 주도하는 기존의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팬덤이 아티스트를 슈퍼스타로 만든 아미의 ‘풀뿌리 성공방정식’은 문화산업 측면에서 혁신적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더해 아미는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확산시키는 모델로도 자리 잡고 있다. 2019년 BTS가 유니세프의 자선 프로그램 ‘Love Myself’에 참여한 뒤로 아미들의 자선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팬덤과 아티스트 간 상호작용이 세상에 긍정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재난 피해자를 돕고, 숲을 가꾸고, 장애인을 돕는 등 다른 아티스트들의 팬덤 선행이 보편화된 것도 아미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수십만 명이 모이는 행사가 열려도 아미들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말끔하게 뒷정리를 하는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스타와 팬덤의 관계는 보통 팬들은 즐거움을 누리고 아티스트는 인기를 얻어 가는 일종의 등가교환 관계로 본다. 하지만 아미와 BTS는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관계로 진화한다는 느낌이다.

한때 사회 병리현상으로까지 여겨지던 대중문화 팬덤에 순기능이 있음을 아미는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질을 타락시키는 우리 정치팬덤의 그늘은 더 짙게 느껴진다. 팬덤을 이용해 정당한 비판마저 무력화시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정치팬덤의 부정적 영향은 우리나라만의 골칫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보다 관심 있는 시민들이 공동체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상식을 산산조각 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일부 정치팬덤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정치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명분으로 이들은 정치인들에게 자신들만의 주장을 수용하라고 압박한다. 보편적 정서와는 무관한데도 이를 국민의 뜻이나 개혁으로 포장한다. 자신들이 옳다는 신념으로 보편적 공감대가 없는 정책 결정을 유도하지만 아무도 그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해악도 이런 해악이 없다. 대중문화 팬덤이건 정치팬덤이건 한 대상에 애정과 열정을 쏟는 건 비슷하다. 그런데 한쪽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다른 쪽은 환멸감을 준다. 우리의 정치팬덤이 바라봐야 할 모델은 멀리 있지 않다.

이왕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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