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주연 영화 '귀공자' 오늘(21일) 개봉
선입견이란 참 무섭다. 우리는 종종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쉽게 정의 내리고 떠든다. 이미 특정한 프레임이 씌워진 사람은 선입견의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그런데 배우 김선호는 달랐다. 겸손하지만 당차고 유쾌한 모습으로 상대방 마음 속의 선입견을 걷어내는 마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의 복귀작 '귀공자'가 21일 개봉했다. 대만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베트남 필리핀 싱가폴 말레이시아 홍콩 등 아시아 주요 13개국에서 동시기 개봉을 확정해 화제가 됐다. 그만큼 김선호의 해외 인기는 대단하다.
이 작품은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를 다뤘다. '신세계' '낙원의 밤' '마녀'를 연출한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개봉을 앞두고 본지와 만난 김선호는 밝은 얼굴이었다. 눈빛과 목소리엔 힘이 있었고,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좋은 결과물이라기보다 감사한 결과물이죠. 제게는 첫 스크린 데뷔작이거든요. 언론 시사 때 영화를 처음 봤어요. 제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와서 놀랐죠. 하하."
완성된 작품을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모르겠다는 그는 "영어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일 년 반 만에 보는 거고 처음 보는 거니까 그 이후로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액션신 할 때가 기억이 난다"고 털어놨다.
잔뜩 긴장한 김선호를 진정시켜준 건 선배 김강우였다. 촬영 현장에서도 그랬다. 김강우는 김선호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였다. "강우 선배는 너무 멋있고 좋은 선배죠. 같이 연기하면서 존경심이 정말 커졌어요. 선배는 연기 시작하기 전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거든요. 이전 상황과 연결해서 몰입해서 하는 게 멋지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볼까' 했죠. '귀공자' 찍은 스태프들이 다 좋아했고 감독님도 '김강우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대본 이상을 해내셨어요."
김선호는 지난 2021년 10월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로 뜨거운 사랑을 받던 중 전 여자친구가 사생활 폭로글을 올리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국내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이듬해 7월 연극 '터칭 더 보이드'로 연기를 다시 시작했고, '귀공자'로 본격적인 복귀를 알렸다.
그간의 생활에 대해 묻자 김선호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운동도 하고 건강하게 지내려 노력했다"며 "나를 챙기는 건 두 번째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기도 바쁜 시간이었다. 감독님이 불러주셨기 때문에 영화도 하고 공연도 했다.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그 시간이 조금은 건강하게 지나갈 수 있었던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에게 '팬'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힘든 시간을 거쳤기에 더욱 그렇다. "팬이 있다는 건 배우에게 고마운 일이죠. 배우가 배우로 바로 설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연기를 열심히 해도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불행할 텐데, 팬들이 기다리고 응원해 주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처음엔 해외 팬들이 있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태국에 촬영 나갔는데 공항에서 직원분이 '홍반장' 이러는 거예요. '한국 분인가?' 했는데 면세점을 지나가는데 또 다른 분이 손을 흔드시더라고요. 다들 카메라 꺼내서 사진 찍고, 감독님도 당황하셨죠. 팬들이 촬영 내내 따라다녀 주셨어요. 감독님이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음치라고 밝힌 그는 "내가 진짜 노래를 못한다. 팬미팅 때 노래를 하는데, 같은 노래인데도 매번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언어가 다르니 진심을 담는데 한계가 있더라. 팬미팅을 가면 오히려 내가 힐링하고 온다. 연기를 감사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귀공자'에서 액션 연기를 선보인 김선호는 군대 조교 출신이다. 그때의 경험이 총기 액션을 펼칠 때 도움이 됐단다. "공포탄이나 실탄 소리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서 조교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권총은 써본 적이 없어서 리딩 두 번째 날 가권총을 주시더라고요. 대본 읽으면서 만지라고요. 극 중 (김)강우 선배가 장총을 쏘거든요. '내가 좀 더 잘 다루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어요. 무게가 제가 군대에서 쓰던 총보다도 무거웠어요. 대사를 하며 조준을 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권총의 행복감을 느꼈죠. 하하."
액션 연기를 펼치며 기억에 남는 일들도 많이 생겼다. "(캐릭터의 의상이) 정장이어서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껴입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달릴 때 바지가 찢어지기도 했죠. 정장을 입다 보니까 제약도 많았어요. 뛰는 장면에서는 감독님이 '돌아이' 같은 느낌을 원하셔서 터널에 가서 웃어도 보고 여러가지를 했는데 웃는 장면을 선택해서 쓰셨더라고요. 저도 그건 예상치 못했어요."
작품 속에서 귀공자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 그러나 김선호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고가다리 위에 올라가서 찍어야 했어요. 안 쓰는 고속도로라고 하셨는데 처음 봤을 땐 '(저기서 뛰면) 죽지 않나' 생각했어요. 귀공자가 초능력이 있냐고 물어봤죠. 하하. 비현실적이어도 영화적인 약속으로 이해될 때가 있잖아요. '편집 잘 해주실 거죠?' 하고 일단 했죠."
고소공포증을 견디고 와이어 액션에 도전한 김선호는 눈물이 조금 났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뛰어내리는 것보다는 다시 와이어로 올라오는 게 힘들었다고. "바람이 부는데 제가 우는 건지 바람 때문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두세 번 하니까 감각이 없어지던걸요. 안전장치를 바닥에 깔아주시기도 했고요."
전작 '갯마을 차차차'의 홍반장과 대비되는 귀공자 역은 김선호 본인에게도 흥미로운 도전이었다. 그는 팬들도 새 캐릭터를 좋아해줄 거라 믿고 있었다. "방송에 많이 노출된 배우이고 어떤 이미지로 알려진 배우인데 남다르고 위트도 있고 완전히 느와르이기보다 변칙이 있고 의외성이 있는 캐릭터니까요. '아 괜찮았어' 하고 두 분 정도라도 공감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연기했어요."
그는 이어 "사람에겐 다양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끌어내는 게 배우의 몫이라 생각한다"며 "거짓처럼 말고 얼마나 진짜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만약 천재적인 배우가 있다면 혼자 하겠지만 난 계속 확인이 필요했다.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계속 보여드리고 체크하고 조율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모든 작품을 그렇게 해왔어요. 제가 겁도 많거든요. 동네 친구라도 불러서 연기를 해보고 냉정한 얘기도 듣고 그래요. 야외 카페에서 추운 겨울에 패딩 입고 소리 지르고 한 적도 있고요. 물론 여섯 시간 놀고 두 시간 반 정도 대본 얘기하고 나머진 쓸데없는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고 그러지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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