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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뒤집은 여성 8명의 죽음, 뭉그적대는 경찰이 수상했다

입력
2023.06.23 04:30
수정
2023.06.23 17: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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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콜드케이스]
<60> 미국 '제닝스 여성 8명 살인 사건'
인구 1만 명 루이지애나주 시골서
4년간 줄 이은 살인 사건
경찰의 부실 수사·은폐 논란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5~2009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닝스에서 살해된 여성 8명. 미 연방수사국(FBI) 제공

2005~2009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닝스에서 살해된 여성 8명. 미 연방수사국(FBI) 제공

2005년 5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주(州) 제닝스의 그랜드마레 운하 다리에서 낚시를 하던 제리 잭슨의 눈에 마네킹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이내 경악했다. 주변에 파리들이 들끓고 있었던 탓이다. 물 위에 떠 있던 건 마네킹이 아니라 시신이었다. 지문 감식을 통해 확인된 사망자 신원은 28세 여성 로레타 루이스. 살인 사건으로 볼 법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루이스로 끝나진 않았다. 2009년 네콜 길로리(당시 26세)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발견되기까지 어니스틴 패터슨(30), 크리스틴 로페즈(21), 휘트니 뒤부아(26), 라코니아 브라운(23), 크리스탈 제노(24), 브리트니 게리(17) 등 여성 7명이 제닝스 인근에서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8건의 미제 살인 사건. 인구 1만 명가량의 한적한 시골 마을 제닝스는 발칵 뒤집어졌다. 그러나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건 이미 7명의 여성이 살해된 후인 2008년 12월이 돼서였다. 미 연방수사국(FBI), 주 경찰 등까지 가세한 태스크포스는 연쇄살인범의 범행 가능성에 주목했다.

성매매 종사·마약 중독 공통점… 연쇄살인범 소행일까

'젊은 여성'이라는 것 말고도 피해자들에겐 접점이 많았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매매와 마약 중독에 노출돼 있었다. 작은 마을인 만큼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게리는 로페즈와 사촌지간이었고, 제노와는 룸메이트였다.

하지만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4명이 체포됐고, 이들 중 2명이 살인 혐의로 수개월간 구금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다른 2명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 중 가장 수상한 이는 프랭키 리처드였다. 희생자 중 패터슨을 제외한 7명과 얽혀 있었던 그는 악덕 포주이자 마약상으로, 제닝스에서 스트립클럽을 운영했다. 앞서 다른 살인 사건과 관련해서도 기소됐던 인물이다. 하지만 목격자 진술이 엇갈리는 등 증거가 충분치 않아 해당 기소는 취소됐었다.

리처드는 2007년 3월 18일 운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로페즈와 함께한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로페즈의 실종 직전, 그와 함께 한 호텔에 있었다는 한 여성은 "리처드와 그의 조카가 로페즈를 죽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다만 이 여성은 나중에 진술을 철회했다. 지역 보안관은 피해자들 중 한 명이 사망했을 때 리처드가 재활원에 입소 중이었다고 확인했다. 리처드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됐다.

2007년 3월 18일 크리스틴 로페즈의 시신이 발견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닝스 운하 인근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2007년 3월 18일 크리스틴 로페즈의 시신이 발견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제닝스 운하 인근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경찰의 무능? 은폐?… 직접 개입했나

경찰 수사는 허술했다. 첫 희생자 루이스와 별거 중이었던 남편은 되레 "왜 나를 조사하지 않느냐"라며 수사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아내가 죽은 후 배우자인 나는 한 번도 심문을 받은 적이 없다"며 "나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한 증거가 무엇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수상한 점도 한둘이 아니었다. 루이스의 시신이 발견되기 직전, 그의 오랜 친구인 앤 데스호텔의 집에 보안관 테리 길로리가 찾아왔다. 길로리는 "루이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라고 꼬치꼬치 캐묻더니 "루이스가 실종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조차 루이스의 실종 신고를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데스호텔은 "이미 보안관은 루이스가 실종됐음을 알면서 그를 찾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경찰이 사망 사건을 은폐하거나, 적어도 연루됐다는 노골적 의심은 계속 퍼져 나갔다. 근거 없는 의문은 아니었다. 보안관 한 명은 중요 증거를 인멸해 벌금형을 받고 수사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 보안관은 2007년 피해자 중 한 명의 지인으로부터 트럭을 샀다. 로페즈가 실종 당일 이 트럭에 타고 있는 걸 봤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왔으나, 그때는 이미 보안관이 트럭을 세차해 다시 판매한 후였다.

제시 유잉 경사는 2007년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여성 2명으로부터 "경찰 고위급 인사가 살인을 은폐했다"는 증언이 녹음된 테이프를 받았다. 동료들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테이프를 지역의 사립 탐정에게 넘겼다. 하지만 탐정은 테이프를 FBI에 전달했고, 곧바로 지역 경찰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유잉 경사는 직권남용과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20년을 복역한 후 해고됐다.

이 사건을 깊게 파고든 저널리스트 이선 브라운에 따르면, 희생자들은 사망 전에 '경찰이 살인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남겼다. 예컨대 길로리는 어머니에게 "경찰이 여성들을 죽였다"고 했다. 당시 며칠 앞으로 다가왔던 그의 27번째 생일을 축하하던 모친에게 "어차피 그때 난 여기에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암시했다고 한다. 브라운 역시 "경찰관 세 명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남겼다.

주 하원의원 찰스 부스타니가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브라운에 의하면 부스타니는 제닝스의 한 호텔에서 희생자 중 3명과 성관계를 가졌고, 이 호텔의 실소유주는 부스타니의 현장 대리인이었다. 당시 부스타니는 브라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 했으나, 선거에서 패한 후 소를 취하했다.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들은 어느 것 하나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미스터리로 남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브라운은 처음부터 연쇄살인범 소행으로 단정한 수사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수년간 사건 파일을 들여다본 그는 피해자 지인과 증인, 용의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희생자들 대부분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선 브라운이 블로깅 플랫폼 '미디엄'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다섯 번째 희생자 라코니아 브라운은 두 번째 희생자인 패터슨 피살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라코니아 브라운은 "낚시꾼이 첫 번째 희생자 루이스를 발견하기 전, 그의 시신이 운하에 떠 있는 걸 내가 먼저 봤다"고 주장했었다. 또 세 번째 희생자 로페즈도 루이스 사건과 관련해 신문을 받았다. 결국 첫 번째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들이 그 이후 줄줄이 시신으로 발견된 셈이다. 이선 브라운은 "이 사실들만으로 즉시 적신호가 켜졌어야 했다"며 "하지만 법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부적절하게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법당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희생자 8명 모두 지역 내 마약 거래 관련 경찰의 정보원이었다는 사실도 브라운의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제닝스는 멕시코 동부 걸프만에서 미국 남부로 유입되는 마약 밀수출 주요 경로의 중간 기착지였다. 마리화나나 코카인 밀매업자, 처방전 없이 약을 구입하는 암거래상(닥터 쇼퍼)들이 넘쳐난다. 1990년대 제닝스 경찰과 보안관은 마약 밀매나 공무집행방해 등에 연루돼 기소될 만큼, 부패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리키 에드워즈 보안관은 "많은 주민이 수사를 불신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런 불만은 주로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경찰을 옹호하기만 했다.

수사는 지금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세 번째 희생자인 로페즈의 어머니 멜리사 게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딸을 죽인 범인과 마주치는 건 아닐까 늘 생각한다"며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8건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지만 단 한 건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이건 무언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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