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모직 합병비율 틀려"
어깃장 놨으나 합병안 통과
"국민연금 의결권 정부 개입"
8,700억 원 ISDS로 2차전 돌입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가 낸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ISDS)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정농단 뇌물 사건' 등 우리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관통하고 있다.
시발점은 두 삼성 계열사의 합병이었다. 제일모직 상장이 성사된 2014년 11월 즈음 증권가에선 "삼성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최상단에 있는 제일모직이 계열사 한 곳과 합병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2015년 초 삼성물산 지분 1.5%에 대한 총수익스와프(TRS) 매수권을 보유한 이후, TRS 매수권을 주식 직접 소유로 바꿔가며 지분을 서서히 늘렸다. TRS는 매수자(엘리엇)가 매도자에게 주식 투자금 일부를 맡기고, 매도자로 하여금 주식을 매수하게 하는 파생 거래다. 주식 투자로 인한 수익은 매수자가 갖되 매수자는 매도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한다.
그해 5월 26일 합병이 공표된다. 합병 비율은 제일모직이 1, 삼성물산이 0.35. 엘리엇은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삼성물산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 절하했다는 반발이었다. 그러나 자본시장법은 합병 무렵의 주식가치를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평가해 불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당시 제일모직 주가가 삼성물산보다 3배가량 높았기 때문이다.
이후 엘리엇은 합병 저지를 위한 실탄을 본격적으로 확보한다. 합병 발표 때만 해도 엘리엇의 지분 직접 보유분이 3.1%에 불과했지만, 약 열흘 뒤인 6월 4일 엘리엇은 7.12%를 보유했다고 공시한다. 추후 금융감독원은 당일 엘리엇이 TRS를 해지하고 대규모 지분을 넘겨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닷새 뒤 엘리엇은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주총) 개최를 막아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내지만 기각된다. 7월 17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대주주(9.92%) 국민연금공단이 합병 찬성표를 던지며 1차전은 엘리엇의 패배로 끝난다.
엘리엇은 이듬해 반전의 기회를 맞는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다. 이후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장이 합병 찬성 의견을 내도록 복지부 공무원들에게 직권을 남용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2017년 1, 2심에서 유죄를 받는다. 그러자 엘리엇은 한국 정부와 담판을 짓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7억7,0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8,716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018년 7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신청서를 접수한 것이다. 엘리엇 사건 중재판정부는 5년 심의 끝에 20일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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