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권 마약수사대 팀장 인터뷰]
20년 경력 베테랑, 최다 마약사범 검거
"저연령화 뚜렷, 수법도 교묘해져 심각"
"수사 노하우 쌓여 덜미 잡히면 붙잡혀"
"마약 근절 위해 국제공조 강화할 필요"
2018년 여름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카페에서 발견된 필로폰 3g에 ‘아시아 3국 마약 조직’이 넝쿨째 걸려들었다. 카페를 터전 삼아 이른바 ‘던지기(마약을 약속된 장소에 숨겨놓고 거래)’ 수법으로 필로폰을 사고팔던 대만인이 경찰이 심어놓은 거래망에 포착된 것. 한국 성일파와 일본 이나가와카이, 대만 죽련방 등 3국 폭력조직이 얽힌 대형 사건의 실타래는 그렇게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수사 착수 7개월 만인 2018년 11월부터 성일파 두목 윤모(당시 62)씨 등 마약을 유통한 피의자들을 줄줄이 잡아들였다. 조사 결과, 죽련방 조직원들은 필로폰 112㎏을 나사 제조기에 숨겨 부산항을 통해 밀반입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던 이나가와카이 조직원들이 이를 넘겨받았고, 판매는 성일파가 맡는 구조였다. 이미 유통된 필로폰 22㎏을 제외한 90㎏(300만 명 투약분ㆍ시가 3,000억 원)도 압수했다. 역대 최대 압수 규모였다. 수사를 이끈 이영권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마약1계 1팀장은 “38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수사관들이 피의자 은거지 주변에서 비닐을 뒤집어쓰고 잠복하는 등 몇 달간 끈질기게 매달린 성과”라고 말했다.
'베테랑'한테도 심상찮은 한국 마약 실태
19일 서울 마포구 마약수사대에서 만난 이 팀장은 마약수사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베테랑’이다. 2003년 가래를 녹이는 약품에 든 향정 성분 ‘덱스트로메토르판’을 유통한 제약업체 관계자 등을 검거해 특진한 뒤로 줄곧 마약수사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실제 그가 2015년 서울 마포경찰서 마약팀장이 된 이래 최근까지 붙잡은 마약사범은 1,412명, 마약수사관 중 단연 최다다. 성일파 사건뿐 아니라 2017년 미국 LA 한인갱단 조직원(8만여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규모의 엑스터시ㆍ필로폰 밀반입) 검거도 그와 수사팀의 작품이다.
가슴 뿌듯할 법도 하지만 이 팀장의 낯빛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한국의 마약범죄 흐름이 심상치 않은 탓이다. 10대까지 마약에 손댈 만큼 저연령화 현상이 뚜렷해졌고, 거래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2017년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마약사범이 40, 50대였는데 계속 나이가 어려지면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텔레그램이나 다크웹이 주요 거래 통로로 자리 잡는 등 유통망이 노출되지 않아 수사가 어렵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마약을 거래할 땐 범죄자들이 ‘상대방이 날 알아보는 것 아닌가, 함정수사 아닌가’하는 경각심이라도 가졌는데,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이 주요 매매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수법이 대범해진 것도 문제다.
"성폭력 교육하듯, 마약 교육 실시해야"
물론 불안감만 있는 건 아니다. 이 팀장은 “마약사범은 한 번 덜미가 잡히면 도망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지능화하는 거래 수법에 맞춰 수사 노하우도 차곡차곡 축적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마약수사를 하는 전국의 모든 경찰관들이 텔레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통망에 포진돼 있다고 보면 된다”며 “잠복 수사 방식도 경험이 많아 한 번 잠복하면 90% 넘게 검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마약 수사는 마약수사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통령이 직접 발본색원 의지까지 밝힌 터라 경찰 전 기능이 수사에 동원되고 있다. 이 팀장은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마약사건 해결에 뛰어들고, 과학수사팀도 추가 범행 단서를 얻으려 거래 현장에 가서 지문을 감식하기도 한다”며 “검거 규모에 만족하지 않고 금융계좌를 살펴보는 등 끝까지 추적한다”고 강조했다. 경찰과 재정당국은 최근 소화전 주변과 배전함 등 마약 배달 의심 장소에 위장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팀장은 마약 근절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공조’를 내세웠다. “마약은 유통 시작점을 끊어내는 것이 관건인데 마약을 제조하는 국가와의 공조가 더 유연해져야 해요. 아울러 직장인들이 성폭력 관련 의무 교육을 받듯이 시민들을 상대로 한 마약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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