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사이렌', 의도적 편집 없는 명예 건 승부 그려
서바이벌 홍수 속 피로도 높아져 '순한 맛' 더 인기
한때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뗄 수 없는 단어는 '악마의 편집'이었다. '악마의 편집'이란 원래 상황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편집 방식. 극적 재미는 고조됐지만 경쟁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해 비판도 많았다. 이제 달라졌다. 대표 주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이렌: 불의 섬'. 여성들의 피지컬 서바이벌을 내세운 것도 새롭지만 그 과정을 다루는 방식이 더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로 '무해한' 편집 때문이다.
'사이렌'에서는 경찰, 소방관, 군인 등 6개의 직업을 가진 출연진 24명이 팀을 이뤄 전투를 한다. 그 과정은 기존 서바이벌과는 조금 다르다. 개개인의 서사도 보여주지 않으며, 과열된 경쟁을 부추기는 '악역'도 없다. 대신 각 직업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를테면 운동선수들은 결과만큼 과정도 중시하고 소방은 현장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 협동한다. 상금도 없다. 출연진들이 매달리는 것은 오직 직업적 명예. 승리를 향해 모든 것을 거니 "센 놈이랑 붙자. 그게 멋있지", "대한민국 여자 멋있다!"와 같은 명대사들이 쏟아진다.
의도성 내려놓은 무해한 편집이 만든 '사이렌'의 가치
'사이렌' 속 경쟁의 가치는 무해한 편집으로 더 빛을 발한다.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는 차별적이다. 가령 조명된 적 없는 여성 댄서들의 삶과 경쟁, 연대를 보여준 Mnet의 '스트릿 우먼 파이터'(2021)조차 '악마의 편집'이라는 오명을 벗지는 못했다. 대표적 장면은 댄서 노제가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표정이 굳자 경쟁팀 YGX 여진이 "괜찮으세요?"라며 도발해 벌이는 신경전. 이는 알고 보니 의도적 편집이었다. 여진은 이후 "노제가 발등을 다쳐 물은 게 그렇게 편집됐다"고 토로했다.
물론 '사이렌'에도 과열된 상황은 발생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주고 의도적으로 편집되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에만 제작진이 개입하고 출연진도 수용한다. 서로의 기지를 뺏고 지키는 기지전에서 군인팀이 소화기를 던지는 위험 행동으로 페널티 처분을 받자 군인팀은 변명하지 않는다. "승부욕을 주체 못 했다. 페널티 받는 게 맞다"는 의연한 반응을 보인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거 여성이 나오는 서바이벌은 늘 '여성은 별 거 아닌 것으로도 기싸움하는 존재'라는 클리셰를 묘사하기 위한 편집이 많았다"면서 "'사이렌' 속 출연진은 승리에 몰두하되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이 오히려 고스란히 나와 신선하다"고 말했다.
서바이벌 홍수 속 "'순한 맛'이 오히려 더 끌려"
쏟아지는 서바이벌 홍수 속 피로감이 쌓인 만큼 '순한 맛'을 찾는 경향도 늘어나는 추세다. 파티시에 경쟁을 다룬 티빙 오리지널 '더 디저트'에는 보통 서바이벌에서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로 활용되는 자극적인 심사평이 없다. 미션 후 "다른 직업을 가져야 하나 싶을 정도로 손떨림이 심했다"며 '번아웃'을 토로한 참가자 박지오의 토로에 같은 직업을 가진 경쟁자들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순한 맛'이 정점에 이른다. "서바이벌인데 힐링이 된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편집 대상이 사람인데도 마치 프로그램의 재미인 소스로만 생각해 흥미 위주로 편집하는 등 일부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작진의 문제의식이 부족했다"면서 "경쟁보다 연대에 더 매력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늘어난 만큼 서바이벌 제작진들도 좀더 신중하게 편집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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