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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명 사망·500명 실종" 그리스 난민선 침몰, 구조적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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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명 사망·500명 실종" 그리스 난민선 침몰, 구조적 참사였다

입력
2023.06.19 20: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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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까지 이주민을 가득 태운 어선이 14일 그리스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이날 새벽 침몰하기 전 그리스 해안경비대에 의해 포착된 모습. AP 연합뉴스

갑판까지 이주민을 가득 태운 어선이 14일 그리스 앞바다를 지나고 있다. 이날 새벽 침몰하기 전 그리스 해안경비대에 의해 포착된 모습. AP 연합뉴스

지중해가 난민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됐다.

북아프리카 리비아를 떠나 유럽으로 향하던 낡은 어선이 그리스 앞바다 지중해에서 침몰한 지 닷새째인 18일(현지시간). 실종자는 500여 명에 달한다. 79구의 시신이 수습됐고, 104명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내전과 가난을 피해 고국을 등진 난민들이다. 이들의 죽음에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반이민 정책'에 위험한 항해 나선 난민들

골든타임이 지난 만큼 생사를 알 수 없는 500여 명의 생존 가능성은 극히 낮다. 2015년 1,1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중해 난민선 침몰 이후 최악의 참사가 될 전망이다.

길이 25m의 낡은 어선의 갑판은 난민들로 빼곡했다. 그러나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과적 어선을 방치했다. 그리스 '뉴스247'에 따르면 난민선은 가라앉기 전 최소 11시간 동안 사고 지점에 떠 있었다. 해안경비대는 "어선이 안정된 항로와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해안경비대가 밧줄로 배를 묶어 견인을 시도하던 중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뒤집혔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침몰 이후에도 신속한 구조는 없었다. 생존자 104명이 전원 남성인 것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주로 짐칸에 탑승해 구조가 늦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상에서 조난당한 난민을 위한 긴급 지원 전화 서비스인 '알람 폰'은 "어선 전복 몇 시간 전부터 그리스 정부에 신고가 접수됐지만 구조 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정부의 반(反)이민 강경 노선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아프리카 대륙과 지중해를 사이에 둔 그리스는 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이 유럽에 도착하는 관문이었지만,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난민을 막았다. 2021년엔 튀르키예와의 육상 국경선 역할을 하는 에브로스강을 따라 35㎞ 길이의 장벽을 세워 육로를 통한 난민 유입을 저지했다. 해상 순찰도 강화했다. 지난달에는 해안경비대가 표류하는 난민선을 강제로 밀어내는 영상이 공개돼 비난받았다. 비정부기구(NGO) 소속 선박의 해상 수색·구조 작업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에 난민들은 더 멀고 더 위험한 바닷길로 내몰렸다. 이번 난민선도 리비아에서 그리스를 우회해 이탈리아까지 최소 725㎞를 항해할 예정이었다.

구조된 시리아 출신 하산(23)은 "4일 동안 배에서 최소한의 음식과 더러운 물만 제공받았다"며 "갑판 아래서 숨쉬기가 힘들어서 난민 밀수업자에게 10유로(약 1만4,000원)를 내고 갑판 위로 올라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침몰 전 식수가 바닥나 6명이 숨졌을 정도로 배 안은 열악했다.


2016년 10월 지중해 연안에서 비정부기구 '프로액티바 오픈 암스' 소속 회원이 난민을 구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16년 10월 지중해 연안에서 비정부기구 '프로액티바 오픈 암스' 소속 회원이 난민을 구조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안전하고 합법적 이주 경로 마련돼야"

침몰선에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출신 난민들이 타고 있었다. 파키스탄 언론은 분쟁지 카슈미르 출신 135명을 포함한 최소 298명의 파키스탄인이 이번 참사로 숨졌다고 전했다.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에 장악된 아프가니스탄과 13년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난민촌이 있는 팔레스타인 등의 주민들도 배에 타고 있었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가 지난 12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지중해에서 난민 441명이 숨진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실제 희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이후 기록상 가장 치명적인 1분기"라는 게 IOM의 설명이다.

영국 가디언은 "올해 지중해를 통한 유럽행 밀항과 밀항 중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안전하고 합법적인 이주 경로가 너무 적다"고 지적했다. 2016년 시리아를 탈출해 독일에서 살고 있는 샤힌 셰이크 알리(31)는 "그 누구도 난민의 이주를 멈추게 할 순 없다"며 "더 안전한 경로가 필요하다"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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