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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의 '녹색평론'과 앞으로의 '녹색평론'의 사회적 역할은 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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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의 '녹색평론'과 앞으로의 '녹색평론'의 사회적 역할은 달라져야"

입력
2023.06.20 04:30
수정
2023.06.20 12: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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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지서 계간지로 복간한 '녹색평론' 김정현 발행·편집인 인터뷰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이 15일 서울 종로구 녹색평론 사무실에 걸린 '무위자연'이라 적힌 액자 앞에 서 있다. 글씨는 선구적인 생태사상가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휘호한 것으로, 창간인이자 김 발행인의 아버지인 고(故) 김종철 선생은 이 액자 아래에 책상을 두고 집무를 봤다. 최주연 기자

김정현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이 15일 서울 종로구 녹색평론 사무실에 걸린 '무위자연'이라 적힌 액자 앞에 서 있다. 글씨는 선구적인 생태사상가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휘호한 것으로, 창간인이자 김 발행인의 아버지인 고(故) 김종철 선생은 이 액자 아래에 책상을 두고 집무를 봤다. 최주연 기자

"1년 반 전 '녹색평론'이 휴간을 말했을 때에도 폐간이나 정간은 전혀 염두에 두질 않았어요."

2년 전 겨울, 격월간 '녹색평론'이 휴간을 알렸을 때 걱정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단순히 '종이매체의 몰락'이라고 표현되는 매체 환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산과 혁신을 필두로 한 경제성장 패러다임과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된 현대 사회에서 녹색평론이 줄곧 주장해온 생태주의 실천이 힘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구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로부터 1년 7개월 뒤, '녹색평론'이 계간지로 바뀌어 돌아왔다. 182호(2023년 여름호)의 권두언에서 김정현(48)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이하 발행인)은 이렇게 썼다. "생태적 지반이 취약해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커지고 세상살이는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하여 근본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더라도 '녹색평론'은 타협하지 않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작업을 힘닿는 데까지 해나가려고 합니다." 다시 이 잡지를 출발하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녹색평론 사무실에서 김 발행인을 만났다.

김 발행인이 계간지로 복간된 녹색평론 182호(2023년 여름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발행인의 뒤에 놓인 책장에는 1991년 창간부터 2021년 겨울 휴간하기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격월로 발행된 녹색평론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최주연 기자

김 발행인이 계간지로 복간된 녹색평론 182호(2023년 여름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발행인의 뒤에 놓인 책장에는 1991년 창간부터 2021년 겨울 휴간하기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격월로 발행된 녹색평론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최주연 기자

"휴간 당시 독자들의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내가 불량 독자라서 휴간하는 것 아니냐'며 자책하는 분도 계셨죠. 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 권유로 녹색평론을 읽기 시작해 대학생이 된 한 독자도 복간 메시지를 보내주었어요. 이런 것들이 저희에게 힘이 되는 동시에 압박이 됩니다.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계시니 잘해야겠다고요."

복간호의 끄트머리에는 독자들의 반가운 메시지가 빼곡하다. 지역별 독자모임을 알리는 광고란에도 설렘과 기대를 응축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복간한 녹색평론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더 간절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독자모임 안내를 올리게 되어 기쁘다.'

한때 1만 부 가까이 인쇄한 적도 있지만 휴간 당시 회원 수는 4,000명 수준. 공백 기간 회원수는 곤두박질쳤다. 후원회를 구성해 재정 확충 도움을 받을까 고민도 했다. 이내 '녹색평론'의 방향과는 맞지 않음을 알았다. 독립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낼 수 있는 확실한 기반은 소수의 거액 후원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후원이라는 것.

1년 7개월 공백기를 거치면서 '녹색평론' 같은 잡지가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독자들조차 이탈하기 시작했다. 재정이 악화하는 가운데, 격월간지를 계간지로 바꾸며 구독료를 낮추는 것 역시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김 발행인의 목소리는 자못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은 회원수를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줄었지만, 1년 뒤에 물어보시면 기쁘게 답하겠습니다." 최주연 기자

1년 7개월 공백기를 거치면서 '녹색평론' 같은 잡지가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독자들조차 이탈하기 시작했다. 재정이 악화하는 가운데, 격월간지를 계간지로 바꾸며 구독료를 낮추는 것 역시 큰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김 발행인의 목소리는 자못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은 회원수를 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줄었지만, 1년 뒤에 물어보시면 기쁘게 답하겠습니다." 최주연 기자

"저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 한 권 낼 때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의 가슴에 가닿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1년이 지나야 계간으로 새 출발한 '녹색평론'이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김 발행인의 아버지로 2020년 타계한 창간인 고(故) 김종철 선생은 시대의 참어른으로 불린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생태사상가. 올여름부터 다시 발행되는 잡지는 '김종철을 계승한 김정현 녹색평론'을 평가할 바로미터인 만큼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을 터.

"아버지와 저는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앞으로 30년 동안 계속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내셨던 '녹색평론'만큼 좋은 책을 낼 자신은 없습니다. 다행히 '녹색평론'을 잘 아시는 독자분들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비교를 하지 않으실 겁니다. 마음의 부담 없이 능력껏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도움을 받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실 김 발행인은 생전 김종철 선생과 2021년 '30주년 기념호'를 낸 후 잠정적으로 녹색평론을 그만 낼 요량이었다고 한다. 회원수나 독자 호응이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면서다. 김 발행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녹색평론을 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에게서 찾았다. "아버지 작고 이후 독자들이 녹색평론에 보여준 열정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같이 읽는 누군가가 있고, 이런 내용을 생각하고 생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일종의 '정신적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주연 기자

기실 김 발행인은 생전 김종철 선생과 2021년 '30주년 기념호'를 낸 후 잠정적으로 녹색평론을 그만 낼 요량이었다고 한다. 회원수나 독자 호응이 상당히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면서다. 김 발행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녹색평론을 내야 하는 이유를 독자들에게서 찾았다. "아버지 작고 이후 독자들이 녹색평론에 보여준 열정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같이 읽는 누군가가 있고, 이런 내용을 생각하고 생산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일종의 '정신적 네트워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주연 기자

김 발행인은 지난 30년 동안의 '녹색평론'과 앞으로의 '녹색평론'의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30년 전과 지금의 매체 환경은 물론 지구가 놓인 처지도 급변했기 때문. 1991년 김종철 선생은 창간호에서 "지금 온갖 곳에서 매 순간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환경재난과 생명 훼손의 사례들은 이 추세에 강력한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나 다음 세대들의 이 지상에서의 생존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들이다"고 했다. '기후위기'가 화두인 오늘날에는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이 창간사가 30년 전에 발표된 것을 고려한다면 시대를 앞선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발행인은 지금도 필요한 내용이 있을 때에는 30년 동안 쌓인 과월호를 뒤적인다. 어떤 최신 해외 자료보다 '녹색평론'이 그간 일관된 목소리로 쌓아온 생태주의 담론이 동시대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의성 있는 정보나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사례를 접할 통로는 충분히 많아졌죠. 이제는 뉴스를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절망과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는 오늘날 현실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와 내 주변 사람을 보살필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허겁지겁 격월로 책을 내기보다 한 호, 한 호 더 깊이 있고 음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적 생태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구축한 고(故) 김종철 녹색평론 창간인의 2011년 11월 ‘녹색평론’ 발행 20주년 기념 인터뷰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적 생태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구축한 고(故) 김종철 녹색평론 창간인의 2011년 11월 ‘녹색평론’ 발행 20주년 기념 인터뷰 당시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녹색평론은 오는 24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김종철 선생 3주기 추모회와 함께 김종철연구소 발족식을 연다. '녹색평론' 복간과 더불어 선생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이어나가기 위한 후속 작업이다. 독자들의 낭독회와 김명수 시인의 추모시 낭독, 이문재 시인과 김 발행인의 대담이 예정돼 있다.

창간 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발행했던 녹색평론이 복간된 것을 보고 김종철 선생은 하늘에서 김 발행인에게 뭐라고 말했을 것 같은지 물었다.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라 책 내는 것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 저는 그저 딸일 뿐이잖아요. 그저 내놓기에 덜 부끄러운 책을 내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요."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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