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호선 에스컬레이터 34% 장치 미설치
노후화 기기에도 비용 문제 탓 설치 미뤄
서울 지하철역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3대 중 1대는 ‘역주행 방지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분당선(수내역)에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이 발생하는 등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이용객이 가장 많은 서울 지하철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가뜩이나 장치를 구비하지 않은 에스컬레이터 대부분이 노후화해 사고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14일 서울교통공사가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서울지하철 1~8호선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방지 장치 설치 현황을 보면 전체 1,827대 중 620대(33.9%)가 ‘미설치’로 조사됐다. 설치 완료는 1,091대(59.7%), 설치 중인 에스컬레이터는 116대(6.3%)였다. 교통공사는 1호선 일부 구간을 제외한 서울지하철 1~8호선 275개 역을 관리한다.
역주행 방지 장치는 상승하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하강할 때 이를 감지하고 세우는 기능을 한다. 정부는 2013년 39명의 부상자를 낸 분당선 야탑역 역주행 사고 후 2014년 7월부터 설치되는 모든 에스컬레이터에 이 장치를 달도록 강제했다. 또 2019년 승강기 안전검사 기준 개정으로 설치 21년이 지난 에스컬레이터는 방지 장치가 없으면 운행을 못 하게 했다.
사실상 모든 에스컬레이터에 역주행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게 됐지만 유독 교통공사 관할 지하철역에서만큼은 장치 설치 이행이 더디다. 가령 한국철도공사는 서울지하철 일부와 그 외 수도권 등 교통공사의 두 배가 넘는 650여 개 지하철역을 관리한다. 에스컬레이터도 2,640여 대나 되는데 운행 중단 등 60대를 뺀 2,580대에 역주행을 감지하는 보조브레이크가 설치돼 있다.
이유는 결국 ‘돈’이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연간 방지 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100대 정도”라고 말했다. 산술적으로 6년 뒤에나 역주행 사고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쓸모를 다해 교체 시기가 임박한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를 미루고 있는 점도 문제다. 에스컬레이터를 교체하면 방지 장치도 설치해야 해 비용이 두 배로 든다는 게 교통공사 측 설명이지만, 내구연한이 가까워질수록 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김성호 한국승강기대 교수는 “같은 사고라도 보조브레이크 유무에 따라 피해 정도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교체 계획이 없는 노후 에스컬레이터에는 우선적으로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물론 아무리 우수한 안전장치를 만들어도 점검ㆍ관리를 소홀히 하면 사고는 피할 길이 없다. 방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수내역 사고가 대표적이다. 유 의원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시민 안전을 외면해선 안 된다”며 “보조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하철역도 시급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