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간부 인사 5명 대통령 재가 뒤 번복
직무 대기발령 받아…"사상 초유의 일"
과거 '정치과' 인력배치 두고 내부갈등설
국가정보원이 1급 간부 5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1주일 만에 번복했다. 특정 간부의 인사 전횡이 배경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두고 지난해 10월 조상준 전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전격 물러났을 때 배경이었던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갈등이 여전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1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가가 이뤄진 1급 국·처장 인사를 최근 전면 취소했다. 대통령 재가가 이뤄진 국정원 인사를 번복하는 건 처음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1급 간부 인사는 전원 대기 발령받았고, 2급 이하 인사는 그대로 승인됐다"고 밝혔다.
초유의 인사번복에 다시 불거진 내부 갈등설
여권에선 이번 인사 번복 배경으로 김규현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A씨를 지목하고 있다. A씨가 내부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윤 대통령이 재가한 인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김 원장의 측근인 A씨가 무리하게 인사에 관여하고 있다는 투서를 확인한 대통령이 인사를 철회하고 직무대기 발령을 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여권에선 "원장 비서실장을 했다고 측근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번 인사 번복과 김 원장과의 연관성에 선을 긋고 나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본보 통화에서 "외부 출신인 김 원장이 내부 사정을 잘 몰라 A씨의 의견을 잘 들었을 뿐, 측근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대내 정보수집 업무를 맡았던 '정치과' 인력 배치로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담당했던 '정치과' 출신 인사들의 재배치를 두고 내부 이견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폐지·해체된 정치과 출신 인사들이 A씨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문제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국회 관계자는 "A씨가 국내 파트를 맡았던 정보담당관(IO)들의 주장을 반영해 국정원 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면서 "A씨 외에 1급 인사에 정치과 출신들이 있었는데, 다수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결정이 번복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국정원 조직이 크게 바뀌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내부 개혁과 안정적 시스템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내부 혼선"이라고 말했다.
조상준 전 기조실장 사퇴 당시도 거론된 인사
그러나 A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 핵심 보직을 맡은 직원들을 물갈이하는 데 앞장선 '핵심 인물'이다. 김 원장이 문재인 정부에서 좌천된 대공·첩보 인력을 대거 등용하는 과정에서 조 전 실장과 갈등을 빚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는 조 전 실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사임하게 한 배후로 거론됐다. 이번 인사 번복에 A씨가 관여돼 있다는 점에서 인사를 둘러싼 국정원 내 갈등이 여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정보소식통은 "검찰 출신으로 구성된 정부 인사검증라인이 뒤늦게 1급 간부 인사들의 문제를 확인해 대기발령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1급 간부 27명 전원을 퇴직시킨 뒤, 2·3급 간부 100여 명을 대기발령했다. 이 과정에서 서훈·박지원 전 원장과 가깝다고 평가되는 인사들은 무보직 인사 대상에 포함되기도 했다. 당시 조 전 실장은 순차적 인사교체를 주장했는데 김 원장이 전면적 교체를 주장한 A씨의 손을 들어주자 불만을 품고 사임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정원은 "조 전 실장이 건강 및 개인적인 사유로 사퇴했다"고만 밝혔다.
한편, 국정원은 이와 관련해 "정보기관의 인사 및 조직사안은 확인해주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언급을 삼갔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일부 언론 보도처럼) 투서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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