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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우울한 100주년

입력
2023.06.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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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개봉한 '인어공주'는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영화들 중 하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난달 개봉한 '인어공주'는 월트디즈니컴퍼니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영화들 중 하나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형 로이는 은행원 출신이었다. 동생 월트는 삽화가였다. 두 사람은 1923년 10월 할리우드에서 영화사를 설립했다. 형은 경영과 재무를, 동생은 창작을 각각 담당했다. 회사 이름은 형제의 성에서 비롯된 디즈니브러더스 스튜디오였다. 1928년 월트는 단편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위해 쥐를 모델로 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큰 인기를 모았다. 캐릭터 이름은 미키마우스. 장차 문화제국을 일구게 될 디즈니 전설의 시작이었다.

□ 월트는 사업수완이 좋았다. 로이의 주식을 일찌감치 사들이고 회사 이름을 월트디즈니 프로덕션스(현재 월트디즈니컴퍼니)로 바꾸었다. 창의력이 빼어나기까지 했다. 사운드와 컬러를 적극 활용한 장편애니메이션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피노키오’ ‘판타지아’(1940), 덤보(1941) 등은 할리우드 고전이 됐다. 월트는 ‘디즈니랜드’라는 놀이공원 사업에까지 손을 댔다. 골초였던 그는 1966년 폐암으로 숨졌다. 65세로 비교적 단명이었다. 월트디즈니 프로덕션스는 침체에 빠졌다.

□ 1980년대 후반부터 황금기는 다시 시작됐다. ‘인어공주’(1989)와 ‘미녀와 야수’(1991) 등으로 애니메이션 명가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2000년대 적극적인 인수합병으로 할리우드 최강자로 거듭났다. 애니메이션계 새 라이벌로 급부상한 스튜디오 픽사를 손에 넣었고, 마블스튜디오와 루카스필름, 20세기폭스 등을 한 지붕 아래 두게 됐다. 지난해 기준 직원은 22만 명. 콘텐츠 개발에 쏟은 돈만 330억 달러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는 수식이 무색하지 않다.

□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으나 빛보다 그림자가 짙다. 지난 2월 7,000명 감원을 발표했다. 실적 저하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의 예상 밖 부진이 뼈아프다. 지난 1~3월 전체 가입 계정 수가 1억5,780만 개로 이전 분기보다 2%가량 줄었다. 2020년 물러났던 밥 아이거가 지난해 11월 다시 경영권을 쥐고 체질개선에 나섰으나 주가는 하향세다. 100년 기업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생사는 넷플릭스, 애플 등과 벌이고 있는 OTT전쟁 승리 여부에 달려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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