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캐나다, ICJ에 알아사드 정권 제소
시리아 회원국 복귀시킨 아랍연맹과는 대조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 배경 속 새 불씨?
시리아가 '민간인 고문'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통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여의치 않자, 일부 서방 국가가 ICJ에 이 나라를 제소한 것이다. '시리아의 도살자'로 악명 높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국제사회가 단죄에 나선 셈이다.
반(反)인권적 국가 폭력과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는 시리아를 다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며 사실상 국제무대에 복귀시킨 아랍연맹(AL)과는 정반대 행보다. 중동에서 미국이 발을 빼는 사이 러시아와 중국이 그 빈틈을 파고들며 지역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시리아발(發) 지각 변동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캐나다 "시리아에 책임 물어야"
12일(현지시간) 영국 로이터통신·BBC방송에 따르면, ICJ는 이날 네덜란드와 캐나다가 시리아(Syrian Arab Republic)를 유엔 고문방지협약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고 밝혔다.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2011년 민주화를 원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내전을 시작한 이후부터 국제법을 무수히 어겼다는 이유다. '고문을 중단하라'는 긴급 명령을 ICJ가 시리아에 내려 달라는 요청도 함께 제출됐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시리아는 모두 유엔 고문방지협약 비준 당사국이다. ICJ가 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시리아 정부군의 고문 행위에 책임을 묻는 첫 국제법원이 된다.
알아사드 정권은 13년째 이어지고 있는 내전 과정에서 자국민 5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반체제 인사 고문은 물론, 민간인 겨냥 독가스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시리아 정부군은 구타와 성폭력, 전기 충격뿐 아니라 신체 일부를 불로 지지거나 손톱·치아를 빼고 굶기는 등 고문을 일상적으로 행했다는 게 시리아인권네트워크(SNHR)의 조사 결과다. 투옥 중 숨진 민간인은 최소 1만4,449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웝크 훅스트라 네덜란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것은 시리아 내전의 정치적 해결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며 "ICJ에 제소한 것은 그 목표를 향한 긴 여정에서 중요한 다음 단계"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리아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대규모로 저질렀다는 걸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리아 끌어안은 아랍, 서방과는 엇박자
당초 서방은 유엔 안보리를 통해 시리아 정부를 ICC에 회부하려 했다.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의 '뒷배' 역할을 해 온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탓에 무산됐다. 이에 네덜란드는 2020년 ICJ 제소를 결정했고, 이듬해 캐나다가 동참했다. 이후 양국은 고문방지협약에 명시된 분쟁 해결 메커니즘에 따라 시리아와 협상을 통한 합의 도출에 나섰지만 결렬됐고, 결국 이날 제소로 이어졌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법적 처벌'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느냐다. 관련 사례가 없지는 않다. 2021년 독일 법원은 시위대 고문에 가담한 시리아의 전직 정보기관 요원에 대해 징역 4년 6개월 형을 선고한 바 있다. 자국에서 일어난 범죄라거나 자국민이 관련되지 않았다 해도,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선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동 정세 급변... 새로운 대리전 전개될 수도
다만 서방의 이 같은 움직임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시리아가 아랍연맹 회원국 자격을 회복함에 따라, 단지 일개 국가 또는 일개 정권의 사안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그 배경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비롯, 중동 지역의 복잡한 역학 관계가 얽혀 있는 탓에 또다시 시리아를 무대로 각국의 '대리전'이 전개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 3월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복원 합의는 중동에서 입김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중재로 이뤄졌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인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이며,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다. 미국의 대중동 영향력 약화가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던 것이다. 이란의 맹방인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조치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사우디와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해 대리전을 치른 국가들이다. 반군은 사우디와 서방의 도움을 받았고, 정부군은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이슬람 종파 갈등에 뿌리를 둔 내전이지만, '서방 대 반서방'의 힘겨루기 양상도 있었던 셈이다. '친미 대 반미'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전통적 대결 구도도 흔들리고 있어, ICJ의 판단에 따라 시리아가 또다시 중동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진앙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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