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으로 공장 가동 종종 중단
"사전 통지 없는 탓에 더 큰 손실"
#.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에서 소비재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인 A씨는 요즘 공장만 생각하면 속이 답답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끊겨 생산 라인이 멈춰선 게 보름 새 세 번이나 된다. 하루는 예고 없이 2, 3시간 정도 전기가 끊겼고, 종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A씨는 “납기 일정을 맞추지 못할까 봐 뜬눈으로 밤을 샌다”며 “베트남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산도 못하는데 인건비만 들고…"
‘동남아시아의 글로벌 생산 기지’ 베트남이 전기 부족에 시달리면서 현지 한국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전력난이 집중된 건 베트남 북부인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9,000여 개 중 5,000개 이상이 북부 공단에 있다.
이달 초부터 박닌·박장·빈푹성과 하이퐁 산업단지에 정전이 잇따르고 있다. 지방정부나 국영 전력회사(EVN)가 하루나 이틀 전에 정전 시간을 알려줄 때도 있지만, 예고 없이 정전되기도 한다.
9일 오전 한국일보가 찾은 박닌성 옌퐁 산업단지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정부가 12~24시간 간격으로 전기를 끊겠다고 통보하면서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출근 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전력 부족 사태 전에는 공장으로 출근하는 대규모 오토바이 행렬과 원자재·완제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으로 도로가 가득 차 있었다고 현지인들은 말했다.
정전 일정을 미리 알려 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공장을 한창 가동하는 낮 시간에 몇 시간씩 전기가 끊기면 직원들은 전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부품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B 대표는 “공장은 못 돌리는데 인건비만 줄줄 나가서 벌써 수억 동(수천만 원) 손해가 예상된다”고 토로했다.
홍선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KOCHAM·코참) 회장은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코참은 베트남 총리실과 전력공사에 “전기 공급 일정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사전 공지해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폭염으로 수력 발전량 줄어든 탓
베트남의 전력난은 한 달 넘게 이어진 무더위 때문이다. 베트남은 전력 대부분을 수력 발전(46%)과 화력 발전(51%)에 의존한다. 올해 폭염으로 댐 수위가 예년보다 70~80% 낮아지면서 수력 발전량이 80% 가까이 줄었다. 석탄 수급 문제로 화력 발전도 여의치 않다. 냉방기구 사용으로 전력 소비는 폭증하는데 전기 생산량은 떨어지면서 산업용 전기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대응 여력을 갖춘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예비 전력을 이용해 생산 시설을 정상 가동 중”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베트남 국영 전력회사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협력사 공장에 전기를 우선공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이다. 자재 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인 C 대표는 “임시 발전기가 있지만 사무 업무용"이라며 “사업의 최대 위험 요인은 불확실성인데 전기부터 문제를 일으키니 불안해서 사업을 계속하겠느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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