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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추구한 아파트 광고

입력
2023.06.10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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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설 예정인 한 주상복합 아파트 광고. 보배드림 캡처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설 예정인 한 주상복합 아파트 광고. 보배드림 캡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화제가 된 어느 고급 신축 아파트의 광고 문구다. 불평등을 찬양하는 듯한 뉘앙스에 이곳저곳에서 천박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나 역시 처음 이 광고를 접하고 본능적인 불쾌함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좀 들여다보니, 싫다는 감정과 별개로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바쳐지는 집이라니.

상품 광고들이 으레 그렇듯 고급 아파트나 주택단지의 광고는 대개 좋은 입지와 고급 시설, 높은 자산가치를 강조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광고는 주거지로서의 강점을 어필하기보다 자신들이 짓는 아파트가 불평등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두에게 같은 가격이 제시되고, 값을 치른다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집인데 집을 사는 행위가 대체 어떻게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이뤄 준다는 걸까.

만든 이들이 의도한 것인지 무의식중에 선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문구의 기저에 깔린 명제는 분명하다. 많은 돈을 가지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집에 사는 것이 그 소유주를 평등이라는 사회규범에서 벗어난, 우월한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 안 된다고 뭉개 버리기엔 우리는 이 명제를 입증할 사례들을 너무 많이 보아 왔다. 고급 아파트 단지 주민이 경비원을 몸종처럼 부리고, 소득 높은 쪽이 낮은 쪽을 함부로 재단하고, 임대주택 아이들과 같은 학교와 놀이터를 쓸 수 없다며 시위하는 모습 같은 것들. 물론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화를 내는 한편으로 또 많은 이들은 이런 세상에서 나만은 설움을 당하는 쪽에 설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 논리를 체화했다. 이 과정이 반복된 결과, 어느새 돈은 명실공히 한국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등극했다. 부자는 우월한 영향력을 갖고 빈자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은 '현실'이라는 탈을 쓴 채 사회의 병폐라기보다 '불편한 진실'쯤으로 취급되었다. 그사이 더 견고해진 황금만능주의는 결국 '불평등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집'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광고에 대한 비난이 커지자, 시행사는 광고를 내리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과연 우리가 평등이라는 가치를 방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프라인에서의 분노와 달리 온라인에는 '욕하는 사람들도 그 집 준다고 하면 좋아할 것'이라는 글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회의 공분을 이끌어낸 이 광고는, 바로 그래서 분명히 누군가의 심금을 남몰래 울렸을 것이다.

돈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그렇다는 것이지, 돈에 남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가치까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는 돈으로 불평등을 산다는 것이 '현실적인' 이야기로 취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농담으로도 부끄러운 일이기를 바란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못 가진 자의 솔직하지 못한 변명으로 취급되지 않았으면 한다. 불평등을 원하는 사람에게 바쳐지는 집이 더 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제 돈 이상의 것들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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