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방망이 처벌 한몫… 초범 벌금형 다수
의료기관개설위원회 실효성 높여야
서울 A병원의 행정원장 Y씨처럼 사무장병원을 개설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고도 또다시 사무장병원을 차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기도에서 2009년 사무장병원으로 내과의원을 개설했다가 형사처벌을 받은 B씨는 당국에 적발되자 해당 의원을 접고, 의료재단 명의로 같은 자리에 다시 내과의원을 열어 6년간 운영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반복되는 사무장병원 설립을 막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꼽힌다.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면 막대한 수익을 챙길 수 있는데, 이에 따른 형사처벌은 상대적으로 가벼워 수익을 포기하지 못한 '사무장'들이 재차 불법 의료기관을 개설한다는 것이다.
사무장병원 양형기준 없어… "높은 양형기준 필요"
불법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해 초범인 경우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재범이어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Y씨도 초범 때 벌금형, 재범 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B씨도 첫 범행 당시엔 벌금 800만 원, 재범 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솜방망이 처벌의 원인은 불법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양형기준은 있지만, 불법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기준은 없다. 경제사범 등 다른 범죄에 준해 양형이 결정되고 있어 대법원이 양형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유관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준래 변호사는 "환수 결정 금액을 기준으로 경제사범과 유사하게 형량을 정하다 보니 국민의 건강을 다루는 보건의료분야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는다"며 "의료기관은 국민의 건강을 다루는 곳인 점을 감안해 한 차원 높은 양형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관개설위, 제 기능 부족… 건보공단 참여시켜야
개설 단계에서 사무장병원을 걸러내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2020년 의료법 개정에 따라 의료기관 개설 허가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의료기관개설위원회가 도입됐지만, 제 기능을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무장병원은 병원급 이상보다 의원급에서 많이 설립되는데, 개설위원회는 병원급 이상만 심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서류상 결격사유가 없는 경우도 많고, 개설위원회는 지자체 관계자와 의료인, 의료단체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런 구성만으로는 사무장병원 설립자의 불법 개설 가담 이력 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사무장병원 관련 정보는 건보공단이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데, 정작 건보공단은 개설위원회 구성에서 빠져 있다.
개설위원회가 사무장병원을 걸러낼 수 있도록 건보공단을 참여시키거나 건보공단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보공단은 사무장병원을 판단하기 위해선 개설위원회에 자금 흐름을 분석할 수 있는 서류와 세무사 등 관련 전문가가 필요하고, 개설위 기능 강화를 위해 공단 직원들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개설위원회가 건보공단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과 건보공단 추천 인물을 개설위에 포함시키도록 하는 법안을 잇달아 발의했는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강 의원은 "사무장병원이 요양급여비용을 부당 청구해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건보공단이 개설위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개설위 실효성을 높일 수 있고, 건보 재정 악화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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