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억 달러 투입한 플레이노 공장 준공
미국 첫 400㎾ 출력 충전기도 첫 출시
"미국 초고속 충전기 시장 선도할 것"
5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차로 40분쯤 달려 도착한 플레이노(Plano)시. 곳곳에서 새 건물을 올리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 법인세가 없고, 도로·항구 등 교통 인프라가 뛰어나며, 명문 대학교가 많은 텍사스는 최근 세계 각국 기업들이 공장을 짓기 위해 몰려드는 인기 주 중 하나다. 텍사스는 미국의 주 중에서 포춘 500대 기업의 본사를 가장 많이(52개) 보유한 지역으로, 부동의 경제규모 1위 캘리포니아보다 성장세가 두드러진 곳이다. 아침부터 플레이노를 채우는 공사장 소리는 텍사스 경제의 이런 활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텍사스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날 텍사스에선 또 하나의 한국 기업이 입주 신고식을 치렀다. SK그룹이 2021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인수한 전기차 충전기 제조 전문 계열사 SK시그넷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한 SK시그넷은 이날 플레이노에서 준공 행사를 열고 가동을 본격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보 계획을 밝힌 지 약 반년 만이다.
SK시그넷은 미국에서 초급속 충전기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부동의 1위 업체다. 통상 전기차 충전기는 150킬로와트(㎾) 이상을 급속, 350㎾ 이상을 초급속으로 분류하는데, SK시그넷의 주력은 초급속 충전기다. 급속 충전기 시장의 1위는 테슬라인데, 테슬라는 초급속 충전기는 아직 만들지 않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 깔린 전기차 충전기의 대부분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완속 충전기다. 하지만 급속·초급속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특히 급속·초급속 충전기는 국토 면적이 커서 평균 주행 거리가 긴 미국에서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ADL에 따르면, SK시그넷이 강점을 보이는 초급속 충전기의 미국 시장 규모가 지난해 1억1,300만 달러였으나, 2025년이면 2억9,000만 달러(약 3,790억 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SK시그넷의 텍사스 공장은 총 5만727㎡(1만5,345평) 크기의 부지에 들어섰다. 필요 장비 등이 모두 반입되면 연간 1만 기 생산이 가능하다. 3기를 연결해 하나의 세트로 만든 게 SK시그넷의 주력 제품인데, 이를 감안하면 미국 공장에선 연간 3,300세트를 생산할 수 있다.
SK시그넷은 텍사스 공장 구축과 증설에 3,700만 달러(약 48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원래 전남 영광군 공장에서 충전기를 생산해 온 SK시그넷이 거액을 투자해 텍사스에 공장을 세운 건 미국 정부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정책(NEVI)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NEVI는 고속도로 50마일(80㎞)마다 초고속 충전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5년간 5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고, 미국 내에서 최종 조립된 충전기를 써야 한다. SK시그넷이 텍사스에 공장을 세운 이유다.
텍사스 공장에선 최대 400㎾까지 출력이 가능한 초급속 충전기 V2를 주로 생산하게 된다. V2는 현대차 아이오닉5를 15분 만에 80%까지 완충 가능한 충전기로, 미국에서 이 정도 출력을 지원하는 전기차 충전기는 V2가 최초다.
신정호 SK시그넷 대표는 이날 준공식에서 "텍사스 공장 준공을 통해 미국 내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조금 정책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초급속 충전기 1위 기업으로 미국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SK그룹이 SK시그넷에 거는 기대도 크다. 유정준 SK그룹 북미 대외 협력 총괄 부회장은 "SK시그넷의 생산시설은 제조업과 운송업의 미래가 될 것이며, 전기차 보급 확산에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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