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안전 예산 줄이고 고속 열차에만 '올인'
'보여주기용' 철로 제어시스템 설치도 안 돼
"대참사, 사보타주 가능성 있다" 물타기도
최소 27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도 오디샤주(州) 열차 충돌 사고는 결국 인도 정부의 '속도에 대한 집착'이 낳은 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속열차 상용화에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기본적인 안전망 확충은 등한시한 '불균형 정책'이 유발한 인재(人災)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고에 대해 특별한 근거도 없이 "사보타주(비밀 파괴 공작)였을 수 있다"는 역주장을 내놨다. 비판의 시선을 불특정 외부 세력에 돌리기 위해 '물타기'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드는 대목이다.
"기계 교체뿐 아니라 '관리 정신' 바꿔야"
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인도 정부가 그동안 철도 인프라 업그레이드에 꾸준히 예산을 편성해 온 건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전년 대비 15% 증가한 300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1,300대의 노후 열차를 고속열차로 바꾸는 데 집중 투입됐다. 나머지 예산도 카슈미르 지역에 건설 중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철교 '체나브 다리' 등 눈에 띄는 사업에 주로 쓰였다.
당연히 철도 안전성 강화엔 소홀해졌다. 2016년 북부 우타르 지역에서 열차 선로 이탈로 140명 이상이 숨진 사고 직후 "철도 안전을 위한 시스템 개편에 거액의 예산을 쓰겠다"던 모디 총리의 약속은 유야무야됐다. 이와 관련, NYT는 "지난해 인도 감사기관이 '철도 안전성 강화에 사용될 돈이 줄어들고 있고, (안전) 관리자들은 책정된 금액을 전부 쓰지도 않았다'고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모디 정권은 그동안 '보여 주기' 행사로 철도 안전성에 대한 지적을 누그러트려 왔다. 아슈위니 바이슈나우 철도부 장관은 지난 3월 자국 언론을 모은 뒤 "인도가 자체 개발한 철로 자동 제어 장치, '카바흐 시스템'을 시연하겠다"며 직접 열차에 올라탔다. 카바흐 시스템은 교차 지점에서 잘 작동했고, 장관이 탑승한 열차도 사고 없이 멈췄다. 그러나 정작 이 시스템은 지난 2일 대참사가 발생한 오디샤주를 포함, 대다수 지역에 아직 설치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인도의 기형적인 철도 예산 운용은 '열차 고속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건 모디 총리의 정치적 의지 또는 집착에서 비롯됐다는 게 CNN 등의 분석이다. 실제로 당초 모디 총리는 3일 인도의 자체개발 준고속열차 '반데 바라트 익스프레스'의 뭄바이~남부 노선 개통식을 대대적으로 개최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행사 전날 저녁 오디샤주 열차 충돌 사고로 개통식 대신 참사 현장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현지 전문가들도 모디 정권의 편향된 예산 운용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아킬레슈와르 사하이 전 철도부 공무원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인도 철도의 가장 약한 고리는 안전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며 "이번 대참사는 기계 교체를 넘어 '관리 정신'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방송도 "인도 정부가 철도 안전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수년간 방치했다"며 "(모디 정권은) 구식 철도를 (신식으로) 교체하는 데에만 거액을 투자하는 바람에 참사를 야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짚었다.
현장 수습 진행 중… 북부선 교각 붕괴 사고도
모디 총리는 이번 대참사와 고속열차 도입 간 연관성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대신 바이슈나우 철도장관이 총대를 멨다. 바이슈나우 장관은 전날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사고 발생이 사보타주였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도 중앙수사국에 테러 관련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참사 원인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개로 현장 수습은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철도부는 7대의 굴착기와 4대의 크레인을 배치해 정리 작업을 하고 있고, 보건부도 수도 뉴델리의 의료진과 의료 장비를 오디샤주로 급파했다. 현장에서 숨진 275명 중 88구의 시신이 유족에게 인계됐으며, 부상자 1,100여 명 가운데 100여 명은 위독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열차 충돌 참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인도 사회는 이날 교각 붕괴 사고로 또다시 화들짝 놀랐다. 4일 오후 북부 비하르주 바갈푸르 지역의 갠지스강에서 건설 중이던 30m 길이의 교각 여러 개와 상판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는 "현재까지 현장 경비원 한 명이 실종된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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