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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도 입양도 모두 '진짜 가족'

입력
2023.06.22 10:00
수정
2023.06.28 19:45
2면
0 0

[절반 쇼크가 온다:2-①가족의 재구성]
'정상 가족' 편견에 시달리는
입양·동거·한부모 등 다양한 가족들
진짜 가족은 "상호 돌봄·정서적 지지"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다목적홀 숲에서 열린 2023년 18회 입양의 날 기념행사에서 국내 공개입양가정의 참여로 이뤄진 이스턴 아동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다목적홀 숲에서 열린 2023년 18회 입양의 날 기념행사에서 국내 공개입양가정의 참여로 이뤄진 이스턴 아동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말 예쁘죠. 그런데 빨리 어린이집 가야 하는데 자기 입고 싶은 옷이 아니라고 고집부릴 때는 밉기도 해요. (웃음) 그냥 다른 가족들과 똑같아요."

제주에 사는 강경필(54)씨는 마흔셋에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했다. 몇 년간 시험관 시술 등을 시도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고 입양을 결심했다. 그렇게 2019년 첫째를, 2년 뒤인 2021년에 둘째를 만났다. 주민 절반 이상이 노령인 250여 세대의 작은 마을에 살다 보니 아기 울음소리는 마을의 경사. 그럼에도 주민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입양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곤 했다. "대단하다"는 말은 강씨를 불편하게 했다. 강씨는 "입양을 한 건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도, 아이가 불쌍해서도 아니다. 아이와 함께 가족을 꾸린 것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 있는 '정상 가족' 신화. 그 편견은 강씨가 겪은 일처럼 사소한 행위와 호의로 포장된 말에서 드러난다. 현실에서는 입양 가족이나 한부모·동거 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존재하는데도 '다른' 범주로 분류된다. '이성 간 혼인과 혈연관계가 있는 자녀로 이뤄진 가족'만이 여전히 정상 가족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개념의 정상 가족은 해체되고 있다. 2011년 이후 꾸준히 내리막이었던 혼인 건수는 2021년 처음 20만 건대가 붕괴됐다. 비친족가구(가족이 아닌 이들이 함께 사는 5인 이하의 가구) 역시 2015년 20만 가구대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해 2021년 47만2,660가구를 기록했다. 2세대 가구(부부-자녀·한부모 포함)는 2000년도 63.3%에서 2020년 44.0%까지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1인 가구와 1세대 가구 비율은 29.7%에서 50.3%까지 급증했다.

그럼에도 사회는 여전히 정상 가족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비혼으로 입양한 두 딸을 키우는 백지선(50)씨는 첫째(13) 초등학교 입학 당시 아빠 이름을 꼭 쓰라고 서류를 거듭 내밀던 교사를 기억한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접해본 경험이 부족해서일 것"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책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냈다. 편견을 없애려면 이를 '알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남자친구와 동거한 지 약 3년 된 정송이(31•'갈월동 반달집 동거기' 저자)씨는 "장례식장, 결혼식장 등에서 친지들에게 서로를 소개할 때 적절한 자격이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결혼처럼 공인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위험한 상태가 되면 서로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 관계니까 가족"이라고 말했다.

이혼 후 혼자 아들을 키우며 육아만화('일상날개짓')를 2008~2013년 한 포털에 연재했던 나유진(44) 작가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혼 당시에는 네 살인 아들이 상처받거나 결핍이 생길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올해 스무 살이 된 아들과 끈끈한 관계를 생각하면,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가정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는 걸 확신한다. 이들은 진짜 가족의 조건에 가족의 물리적 형태보다는 '상호 돌봄' '정서적 지지'가 포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상 가족' 신화를 해체하는 건 저출생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가정폭력, 간병살인 등 사회문제를 푸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산 사람이 가장 폭력적일 수도 있고 혈육을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현실에 맞는 가족 개념 정립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거 가족이 받는 법적 차별은 개선이 시급한 문제다. 동거인은 응급수술이 필요할 때 보호자로 서명할 수도 없고, 장례 주관자로 먼저 나설 수도 없다. 나 연구위원은 "함께 사는 친구, 이성·동성 연인 등은 가장 가까운 관계라도 연락이 끊긴 부모·자식 등에 밀려 의사 결정을 대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글 싣는 순서

절반 쇼크가 온다' 글 싣는 순서

제1부 인구 충격 진앙지, 절반세대
①소멸은 시작됐다
②2038 대한민국 예측 시나리오
③절반세대 연애·결혼·출산 리포트
④절반세대 탄생의 기원

제2부 무너진 시스템 다시 짜자
①가족의 재구성
②직장의 재구성
③이주의 재구성
④병역의 재구성
⑤교육의 재구성
⑥연금의 재구성

제3부 절반세대가 행복한 세상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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