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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살인? 또래 열등감?... 범죄 전문가가 본 정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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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살인? 또래 열등감?... 범죄 전문가가 본 정유정은

입력
2023.06.03 04:30
6면
0 0

일반적 살인범과 구분되는 '이상 동기'
"그저 살인 즐겨"... 고립, 충동 키운 듯
사이코패스 기질도, "연쇄살인 가능성"

과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과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이 2일 오전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실제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

과외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까지 유기한 정유정(23ㆍ구속)이 경찰에 말한 범행 이유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거나 책을 보면서 그저 살인 충동을 느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대개 인명을 앗아가는 중범죄는 목적성, 즉 살인 동기가 뚜렷하기 마련이지만 정유정은 기존 범죄의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2일 범죄 분석 전문가들에게 그를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물어봤다.

① 고유정·이은해와 달라... "살인 자체 목적"

부산에서 과외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유정(23). 부산경찰청 제공

부산에서 과외 앱을 통해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유정(23). 부산경찰청 제공

정유정의 범행이 처음 알려졌을 때 2019년 이혼한 남편을 제주도 펜션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한 고유정의 수법과 닮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특정인을 겨냥해 복수심에 불타 목숨을 노린 고유정과 달리 정유정은 살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쾌락형’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는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계곡에서 죽인 이은해와도 구분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정유정은 살인이라는 행위에서 흥미를 느끼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② '오랜 고립'이 살인 충동 키웠나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 결과를 보면, 정유정은 고교 졸업 후 5년간 타인과의 교류 없이 사실상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고립된 생활 패턴이 살인 충동을 부채질했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까닭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기 특성은 살인 등 반(反)사회적 행동 충동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유정이 사회화가 단절된 삶에 오랜 기간 방치된 탓에 정상적 가치ㆍ신념을 더 이상 습득하지 못하고 청소년기로 퇴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웅혁 교수도 “사회와 거리를 두고 혼자 범죄물에 심취한 것이 (살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짚었다. 이런 관점에 근거하면, 온라인상에서 살인 역할극 등을 즐기던 여고생들이 초등학생을 집으로 유인해 잔혹하게 살해한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에 가깝다는 의견도 있다.

③ '과외 교사' 타깃 삼은 이유는

지난달 26일 정유정이 피해자 A씨를 살해한 후 자택으로 돌아가 여행용 가방을 챙겨 다시 A씨 집으로 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CBS 캡처

지난달 26일 정유정이 피해자 A씨를 살해한 후 자택으로 돌아가 여행용 가방을 챙겨 다시 A씨 집으로 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CBS 캡처

정유정은 왜 하필 ‘과외 교사’를 타깃으로 삼았을까. 이 역시 가상의 현실(범죄물)에 심취한 그의 심리적 상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정유정은 과외 아르바이트 앱에 학부모 회원으로 가입한 후 피해자에게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엄마인데 영어 과외를 받게 해주고 싶다”고 접근했다. 이후 중고 교복을 구입해 중학생인 것처럼 속여 피해자 집을 찾았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작가적 관점에서 ‘무방비 상태의 혼자 사는 여성에게 학생인 척 교복을 입고 찾아가 반전 살인을 저지른다’는 시나리오를 쓰고, 그걸 실제로 연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일각에서는 ‘고졸’ ‘무직’으로 대변되는 열등감에 시달리던 정유정이 보복 심리로 ‘고학력 여성’을 점찍었다고 분석하지만, 전문가들 모두 “무리한 추론”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정식 교수는 “통상 범죄자들은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보다는 약한 사람을 공격한다”고 반박했다.

④ 사이코패스인가, 아닌가

정유정은 범행 뒤 피해자 시신 일부를 여행용 가방에 담아 평소 자신이 산책하던 낙동강변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해 버렸다. 계획적 범행 준비 과정에 견줘 뒤처리는 상당히 미숙했다고 볼 수 있다. 공정식 교수는 이를 근거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하기엔 허술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이코패스 범죄가 완벽하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라며 “정유정은 초범인 데다 살인 감정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실수를 많이 저지른 것 같다”고 해석했다.

만약 정유정이 ‘완전 범죄’에 성공했다면 연쇄 살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웅혁 교수는 “정유정은 살인에 빠져 최근 강력범죄 요소들을 모두 학습한 흔적이 보인다”며 “첫 범행에서 미진한 점을 보완해 살인을 거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다원 기자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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