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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함'과 마주하다

입력
2023.06.03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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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이를 두고 '영리하다'라고 한다. '머리가 영리하다, 영리하게 대답하다' 등 사리에 밝고 총명한 사람에게 쓰인다. '영리한 소년, 영리한 아이'처럼 주로 나이가 어린 대상에 붙고, 심지어 사람만큼 똑똑해 보이는 강아지나 고양이더러도 그렇게 부른다. 영리하다는 말은 19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하니 그리 오래된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간 별로 인기 없던 이 말이 최근 일상생활과 드라마에서 언중의 입말로 자주 들린다. 주로 '와, 영리한데?'와 같이 몰랐던 사실에 놀라듯, 감탄하는 말로 말이다.

머리가 좋고 문제 상황을 빨리 파악하거나 해결하는 사람에게 흔히 '똑똑하다'고 한다. 똑똑하다는 셈에 정확할 뿐만 아니라 사리에 밝으며 자기 의사를 또렷하게 밝히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비슷한 말에 단단하고 실하다는 '똘똘하다', 다소 종합적 평가인 듯한 '총명하다, 지혜롭다'도 있다. 이 가운데 '영리하다'가 상대적으로 덜 쓰인 까닭은 바로 어감 때문이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한 사내를 '배고픈 고양이처럼 영악하게 영리한 친구'라고 묘사한 것처럼, 영리하다란 한때 '약삭빠르다, 영악하다'에 더 가까웠다. '영리한 고양이가 밤눈 어둡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못 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역시 부족함이 있을 때'를 비유하는 말로 은근히 핀잔을 주는 인상이다. 그러던 '영리하다'가 문제 상황을 잘 해결해 내는 이를 칭찬하는 말로 쓰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복잡한 현대 사회가 영리함을 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록 그런 배경이 있을지라도 선한 말이 하나 더 생겼으니 다행스럽다.

한국 사회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다. '겸손'과 '감정 표현의 절제'가 미덕이었던 문화에서, 설령 누군가를 좋게 보더라도 묵묵히 응원하는 그것이 진심이라던 생각도 크다. 그런데 칭찬을 듣고 자라지 못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칭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친한 학생들끼리 '최악이다'를 연발하기에 무슨 상황인지 물었더니 그 말이 그저 가벼운 인사란다. 악당에게나 할 만한 폄하의 말을 벗들에게 편하게 하고 있으면서도 서로 놀라지 않는다. 그간 '부러우면 지는 거다'면서 경쟁과 오기를 부추긴 이 사회가 뒤늦게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기성세대가 해결해야 할 공통의 숙제가 생겼다. 누군가가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고 남이 잘했으면 자연스레 감탄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기는 날, '영리하다'의 긍정적 쓰임이 유독 귀에 박힌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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