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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밥 먹이려 ‘외상’, 야채는 빼주세요”… 배달 앱 주문요청에 골머리 앓는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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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밥 먹이려 ‘외상’, 야채는 빼주세요”… 배달 앱 주문요청에 골머리 앓는 자영업자

입력
2023.06.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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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데 너무 배고파, 나중에 입금…”
“입금 날짜 안 지키고, 분할 납부 요청도”
“매출·소비 여력 감소… 팍팍해진 현실 단면”

한 음식점주가 지난달 5일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배달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3건의 외상을 요청한 사람의 주소지가 모두 같아 동일인으로 보인다. 네이버 캡처

한 음식점주가 지난달 5일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배달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3건의 외상을 요청한 사람의 주소지가 모두 같아 동일인으로 보인다. 네이버 캡처

배달 응용소프트웨어(앱) 주문서의 '주문요청'을 통해 음식 외상을 부탁한 임신부가 화제가 된 가운데 이와 비슷한 요청을 받아 곤란했다는 자영업자의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비대면 읍소'를 받아들였다가 손님에게 음식값을 떼였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 소비 여력이 감소한 서민의 팍팍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인다.

지난 4월 3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배달 앱을 통해 “제가 미혼모에 임신 중인데 너무 배가 고픈데 당장 돈이 없어서 염치없지만 부탁 드려 봅니다”란 외상 요청을 받았다는 분식점주 A씨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틀 뒤 A씨는 ‘미혼모 손님으로부터 음식값을 계좌로 입금받았다’는 후일담을 올리기도 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 외에도 배달 앱 주문서를 통해 궁색한 처지를 강조하며 읍소하는 주문자의 외상 요청을 받았다는 사연이 잇따랐다. B씨는 지난달 5일 올린 ‘외상배달’이란 제목의 글에서 “저희 가게에 열흘 동안 외상 배달 요청이 세 건 들어왔다”며 배달 앱을 통해 온 주문서를 공개했다. 한 주문서의 주문요청란에는 “사장님 아이 밥 먹여야 되는데 외상 가능할까요? 내일 드릴게요, 부탁 드려요”라는 글과 함께 “가능하면 야채 빼 주세요”란 요청이 담겨있다. 또 다른 주문서에는 “사장님 20일에 3만 원 보내드릴게요. 외상 가능할까요? 너무 배가 고파서요”란 내용이 들어 있다. “사장님 아이 밥을 먹여야 돼서 그런데 외상 가능할까요? 어제부터 밥 못 먹이고 집에 남은 과자만 먹였어요”란 메시지도 있다.

B씨는 이 3건의 주문서를 보낸 사람의 주소지가 같아 동일인으로 보인다며 “그 지역은 배달비만 8,500원인데 오늘은 돈 없고 내일은 돈이 있으면 내일 시켜 먹든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다 거절했다”고 밝혔다.

“‘비대면 읍소’ 넘어가 외상 음식 보냈다가…”

한 음식점주가 지난 4월 9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네이버 캡처

한 음식점주가 지난 4월 9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네이버 캡처

이 같은 ‘비대면 읍소’에 넘어갔다가 음식값을 받지 못했다는 하소연도 있었다. C씨는 지난 4월 9일 오후 11시 47분에 올린 ‘형님들 외상거래’란 글에서 “다들 경험이 있으실 듯한데, 저희 직원이 주문(배달)을 보내줬는데 계좌로 돈이 안 들어온다”라고 밝혔다. C씨가 공개한 사진(주문서)의 주문요청란에는 “학생인데 (돈이 9일) 저녁이나 월요일(10일)에 들어와서, 너무 배가 고파서요”라며 “계좌 같이 적어주시면 입금할게요. (휴대)폰 정지라 부탁 드립니다”라고 돼 있다.

이 같은 요청으로 음식을 배달받은 손님이, 외상을 갚기로 한 날짜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분할 납부를 요청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D씨는 지난달 3일 ‘외상배달주문’이란 제목의 글에서 “사장님 죄송한데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화요일(2일)에 계좌이체해드려도 될까요?"라며 "화요일까지 입금 안 될 시 법적 책임 지겠습니다. 약속 무조건 지킵니다”라고 한 배달 앱 주문서의 주문요청을 공개했다. D씨는 “(외상으로 음식을 배달받은 손님이) 어제(2일) 입금한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요”라며 불안해했다. 이후 올린 글에서 D씨는 “(주문자에게) 연락하니 음식값의 50%만 입금했다”며 “나머지는 금요일(5일)에 준대요. 이 정도면 다 줄 것 같긴 하죠?”라고 했다. 이후 D씨가 잔금을 받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앞선 사례에서 A씨는 외상을 요청했던 미혼모(19)가 외상값을 치르자, 그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분식집의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제공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다른 자영업자들은 이 같은 요청을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B씨의 사연에 자영업자들은 댓글을 통해 “정말 (외상 요청이) 필요하면 (음식점에) 직접 방문한다. 그게 아니라면 (외상 요청은) 전부 차단해라”, “그 뉴스(A씨 사례) 보다가 모방 범죄 하는 일 많겠다 생각했다”, “저런 건 (음식 배달) 보내지 마라. 정말 돈 없으면 배달비 아까운 것도 안다” 등의 생각을 내보였다.

“코로나19 대유행 때보다 어려운데…”

한 음식점주가 지난달 3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네이버 캡처

한 음식점주가 지난달 3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한 응용소프트웨어(앱)를 통한 외상 요청. 네이버 캡처

이 같은 현상은 경기침체에 곤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자영업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사태에 더해진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포함한 여러 경제 여건 악화로 매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한 상황에서 코로나19 대유행 때 받은 대출의 이자뿐 아니라 원금까지 갚아야 되는 시기가 도래했는데, 추가 대출은 막혀 있어 어려움이 큰 상황”이라며 “난방비 등 공공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활성화된 상권을 제외하면 소상공인 전반이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지출은 느는데, 수입은 줄어 외상 요구에 부담이 이전보다 훨씬 커진 상황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소비 여력이 줄어든 소비자가 비대면 방식으로 과거보다 손쉽게 외상 요청을 하면서 자영업자의 부담을 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영업자 못지않은 경제 여건을 맞고 있는 서민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 총장은 "이(배달 앱을 통한 외상 요청)는 물가상승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소비 여력이 급감한 소비자의 경제위기 상황 또한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자영업자들이) A씨와 같이 ‘생계형' 외상 요청에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겠지만, 악의적이고 반복적으로 외상을 요청하고 이른바 ‘먹튀'(먹고 도망치는 행위) 하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 이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며 "관계당국도 이런 경우는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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