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일이 재미없었다" 고백한 송승헌
배우로서 편안함 느낀 시점은 '인간중독' 때부터
"신동엽 형이 장가가라고 권유... 어느 날 결혼할 수도"
1996년 MBC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서 어리숙하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배우 송승헌. 어느덧 데뷔 28년 차의 중견배우가 된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변함없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일에 있어 과거보다 확연히 편안하고 부드러워졌다는 점. 그는 "현장이 너무 좋고 예전보다 요즘이 더 재밌다"고 말했다.
사실 친구들 앞에서만 보여주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취재진에게 보여준다는 건 예전의 송승헌에겐 상상하기 어려웠다. 겸손하지만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했던 그는 '택배기사' 인터뷰에서 상상 이상의 유쾌한 매력을 보여주며 색다른 매력을 과시했다.
'택배기사'는 혜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 지 40년이 지난 2071년, 사막으로 변한 서울을 배경으로 한다. 극 중 송승헌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천명그룹 후계자 류석을 연기했다.
"어떤 작품이든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다"고 운을 뗀 송승헌은 "원작을 본 국내 팬들의 반응도 이해한다. 그런데 해외 반응은 오히려 그런 건 상관이 없는 거 같더라. 신선한 오락물로 받아들이더라. 온도차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송승헌은 류석이 반드시 악역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희생을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당연히 나쁜 놈이겠지만, 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하나의 현안을 놓고 서로 시각차가 있지 않나"라고 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며 송승헌은 자연 다큐들도 찾아보고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촬영 시기가 코로나가 극심하던 때라 더욱 마음에 와닿은 부분도 있었다.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참 위대해요.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고 이겨내고.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대면 인터뷰를 하는 것도 감사하고요. 예전에는 자연스레 즐기던 건데 한동안 못한 거잖아요. 이제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인데 '이게 소중한 거였구나' 하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이번 작품에서 그는 김우빈과 함께 연기했다. 투병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김우빈은 성숙한 모습으로 선배 송승헌을 많이 놀라게 했다.
"우빈이 같은 경우 아팠었고 위험했던 지경까지 갔던 터라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 와서 연기를 하는 게 너무 감사하다고요. 우빈이를 보면 어른스럽고 '왜 저렇게까지 하지' 할 정도로 배려심도 많아요. 조의석 감독한테 좋은 친구라고 듣긴 했는데 촬영하며 더 느꼈죠.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긴 시간 배우로 활동해온 송승헌은 이제 대선배로서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는 신인 시절이 엊그제 같다며 웃었다.
"전에는 다들 누나이고 형들이었는데, 이젠 현장에 가면 '내가 이렇게 나이가 많아졌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부족한 것도 많고, 배우로서도 제 자신이 만족하면서 연기하지는 못하지만 계속 찾아주고 작품을 봐주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송승헌은 일을 즐기지 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20~30대 때는 이런 생각을 못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연기자가 꿈이던 사람도 아니었고 우연히 운이 좋게 좋은 분들을 만나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나의 직업이고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예전엔 현장이 즐겁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가 연기를 편안하게 느끼게 된 시점은 영화 '인간중독'을 촬영할 때부터였다. 대중이 송승헌에게 원하는 이미지나 색깔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캐릭터였고, 그 작품을 한 뒤로는 그 역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후로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고 달라진 반응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정의롭고 착하고 멋진 역할들, 그런 작품을 할 때는 호의적인 평가가 아닌데 허당기가 있고 빈틈 있는 남편 역을 맡으면서 멋져 보이지 않으려 하고 내려놓으니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요즘은 현장에서 연기가 너무 재밌어요. 나이 먹었나 봐요. 철이 드나 그런 생각도 들고 정말 재밌어요. 20대 때 더 재밌게 했으면 더 좋은 배우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요. 예전엔 일이 재미없었거든요."
그렇다면 그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긴 고민 끝에 생각보다 단순한 답변이 돌아왔다. "보통 일이 없을 때는 집에 있는데 2~3일이 훌쩍 지나가 있더라고요. 약속이 없으면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서 TV보고 게임하고 그런 것들이 즐거워요."
아직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송승헌에게 "비혼주의냐"고 묻자, 아니라고 답했다. "어머님이 갑자기 '결혼 안 하냐'고 묻더라고요. 전엔 그런 얘기를 안 했거든요. (소)지섭이도 가고 진짜 비혼주의였던 동엽이 형도 (결혼하면) 너무 좋다고 빨리 하라고 하더라고요. 애기들과 생활이 너무 좋다고 꼭 하라던데. 의심도 가고 '진짜 좋은 거 맞아?'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하하. 친구들도 아이들과 같이 왔을 때 보면 부럽기도 해요."
송승헌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남자다. "혼자가 익숙해지는데 그러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편함과 익숙함을 깨부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야죠. 저는 눈에 뭐가 씌여야 해요. 제가 빠져야 하는 타입이죠.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순진한 청년이랍니다. 어느 날 결혼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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