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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구 15%에 한국은 '관광절벽'

입력
2023.05.30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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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황희찬 선수. AP뉴시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황희찬 선수. AP뉴시스

얼마 전 이메일을 받았다. "저는 영국 축구클럽에서 일합니다. 팬 20여 명이 7월에 한국을 가는데 인천아시아드, 경기 수원 월드컵경기장의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한글 번역기로 돌린 듯한 메일을 보낸 사람 이름 옆에는 이런 소개문구가 있었다. '장애인 접근 담당관(Disability Access Officer).'

소개문구를 보고 충격받았다. 한국의 프로 구단들 중에 '장애 팬들을 위한 접근성 담당자'를 둔 곳이 있던가? 내가 알기로는 없다. 부럽고 놀라운 마음도 잠시. 무려 프로구단에 '장애인 접근 담당자'가 있는 이 영국 팬들이 한국 장애인들에게조차 복잡한 교통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두 경기장 모두 비교적 최근에 지어졌기에 경기장 자체의 장애인 접근성은 아마도 양호할 것이었다.

문제는 '그 경기장까지 어떻게 도달하느냐?'였다. 그나마 접근성이 가장 좋은 지하철. 인천과 수원 경기장은 지하철역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지하철은 패스. 그렇다면 택시를 타면 되는 것 아닌가? 가능하지만 어렵다. 서울, 인천, 수원은 서로 장애인콜택시를 따로 운영한다. 거주지역이 아니면 미리 각 지역에 등록해야 한다.(외국인들이 사전등록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근본적으로 내국인들에게조차도 숫자가 적어서 1~2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라고 외국인에게 차마 권해줄 수가 없다. 지자체 운영 장애인콜택시 말고 휠체어가 들어가는 일반 택시가 있기는 하지만 숫자도 적고 서울 안에서 주로 운영돼 장애인 팬들의 숫자에 따라 다 이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버스를 타면 되는 것 아니냐고?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의 비중은 서울이 이제야 50%를 넘겼고 그 이외의 지역은 현저히 더 열악하다. 버스를 대절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휠체어 여러 대가 탈 수 있는 버스를 대절한다는 건 더 어렵다.

한국 배우를 좋아해 한국에 9번이나 온 일본인 친구에게도 연락이 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 친구는 이번에 처음으로 부산 뮤지컬을 보러 간다며 걱정스럽게 이것저것 물어 왔다. 휠체어석은 언제나 전화로 별도 예매를 해야 하기에 대신 예매해 줬다. 예매를 받는 담당자는 매우 친절했지만 '이걸 왜 전화로만 예매해야 하는지? 외국인 장애인 관람객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하는 건지?'란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KTX 휠체어 좌석은 오로지 주민등록번호로 장애인 여부를 확인해야만 예약 가능했다. 일본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피부과는 친구가 휠체어로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도와줄 사람이 없고 통로가 좁다'며 거절했다.

이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패럴림픽 때도 장애인 접근성 관련해 외국인 선수들이 불편을 겪더니 바뀐 게 없다'는 지인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도시철도가 있는 대도시에서는 그럭저럭 휠체어로도 다닐 만하지만 대도시를 벗어나면 '도대체 어떻게 이동하는지'가 난제다. 장애인 관광객들에게 도무지 서울, 부산 이외의 장소를 추천해 주기가 어려운 이유다.

일본인 친구는 7년 전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의 무릎에 어떤 여성이 김치통을 놨던 이야기를 꺼냈다. 7년이 지났는데도 번듯하게 큰 피부과에서 휠체어 때문에 거절당하다니. 이번에도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장애인구는 15%에 육박한다. 동반인까지 합치면 30%에 달하는 잠재 고객이다. 한국에서 나쁜 경험을 한 장애인 관광객들과 그 동반인이 한국을 오고 싶은 곳으로 추천할까? 모든 장애인 관광객들이 '모험을 좋아해서' 여러 번 왔다는 일본인 친구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는 '접근성 담당자'를 반드시 두도록 제도화를 했다. 한국에서도 '인구의 15%'를 위한 제도적 방안이 시급하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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