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올드 오크'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만 15번 진출
영 탄광촌 정착 시리아 난민과 지역민 사연 그려
"제국주의가 만든 혼란... 약자는 연대만이 살길"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15번 초청됐다. 역대 최다다.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2차례(‘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안았다. 아홉 명만 누린 영예다. 영국 감독 켄 로치(87)는 거장 이상의 수식이 필요해 보인다. 90이 가까운 나이에도 영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그를 지난 25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숙소에서 만났다. 로치 감독은 신작 ‘디 올드 오크’로 제76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을 찾았다. 그는 야위었으나 눈빛이 강했고, 말은 거침없었다.
‘디 올드 오크’는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옛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가난한 주민들은 난민들에 반감을 품는다. 퇴락한 지역의 집값 하락을 부채질한다는 생각에서다. 로치 감독은 “오래된 탄광지역은 일꾼도, 사람들도, 공공장소도 사라지고, 학교와 교회들까지 문을 닫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남은 사람은 적고 집들은 비어가고 허물어져 가는 곳이니 아무것도 없는 시리아 난민들이 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로치 감독은 “(영화 속) 혼란이 영국이 주도한 제국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갈파했다. 그는 “서구국가들이 만들어낸 혼란이 그들(시리아인)이 자신들 안전을 위해 자기들 나라를 떠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시리아가 제국주의 식민시대를 거치며 정치적 불안 요소를 지닌 국가가 됐고, 이는 서구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로치 감독은 난민과 가난한 지역민의 갈등을 체제가 부추긴다고도 봤다. 그는 “경제시스템은 가난과 고통과 불안감을 낳고, 사람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고 화가 나기 마련”이라며 “언론과 정치인, 거대 사업체 등을 통제하는 이들이 당신의 문제는 당신보다 못한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당신들 집을 가져가고, 적은 돈으로 일을 해 당신들 일자리를 가져가니 그들을 비난하라 한다”는 것이다. 로치 감독은 “나치가 1920~30년대, 영국인들이 중세시대 유대인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돌렸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영화 속 시리아 난민과 지역민은 갈등을 이어가나 이내 공존을 모색한다. 동네 사랑방인 선술집 ‘디 올드 오크’의 주인장 TJ(데이브 터너)는 야리(엘바 마리) 등 난민에 손을 내밀며 가까이 간다. TJ와 야리는 굶주리는 난민과 지역 10대들을 위해 급식소를 운영하며 양쪽의 거리를 좁힌다. 탄광촌 노동자들이 파업 투쟁을 하며 소년소녀들의 식사를 챙겼던 과거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결과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우리는 함께 뭉친다(We Eat Together, We Stick Together)’는 영화 속 문구는 로치 감독이 오래도록 주창해온 ‘연대(Solidarity)’를 함축한다. 로치 감독은 “연대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라며 “우리(약자)는 집단일 때 오직 힘을 가지고 이길 수 있으며, 개인으로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디 올드 오크’는 로치 감독의 28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불쌍한 암소’(1967)와 ‘케스’(1969)로 ‘키친싱크(1960년대 영국 빈민층을 그린 사실주의)’의 영화 분야 대표주자였다. 아일랜드 독립 문제를 다룬 영화(‘숨겨진 계략’)를 만들기도 했고, ‘랜드 앤 프리덤’(1995)으로 스페인내전을 돌아보기도 했다.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빵과 장미’)을 되짚기도 했다. 다양한 소재들의 공통분모는 약자의 희망 찾기다. 그가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로치 감독은 “우리가 희망을 가지지 않으면 인종주의가 번창하고, 그러면 극우가 준동하고, 이후 나치즘이 나타나게 된다”고 말했다.
로치 감독은 ‘지미스 홀’(2014)을 끝으로 감독 은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연출을 재개해 화제를 모았다. 2019년에는 ‘미안해요, 리키’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말들이 나온다. 로치 감독은 “촬영기간 내내 감정적 에너지를 유지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다음 영화 연출을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장편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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