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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라는 프로파간다

입력
2023.05.29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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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집회 불법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집회 불법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법과 원칙 내세워 노조 압박, 집회 제한
시민 권리 억눌러 얻은 질서 의미 있나
시끄럽고 불편한 것 포용할 필요 절실


노조 때리기를 공약으로 내세워 눈길을 끈 정치인은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중도 사퇴하기 전 그는 최저임금·52시간제 완화 등 노동개혁을 1호 공약으로 걸고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청년이라고 노동자, 조합원이 되지 말란 법이 없는데 노조가 죽어야 한다는 공격적인 표현에 충격을 받았었다. 이 접근은 윤석열 정부에 고스란히 이어진 듯하다. ‘법치’로 포장한 것이 다를 뿐 노조와 청년을 갈라치고 노조를 공격하는 점은 마찬가지다. 정부는 ‘귀족노조’의 ‘불법’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이 법치가 노조와 노동권 약화로만 이어지니 문제다.

지난해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화물연대 2차 파업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윤석열 대통령은 “노사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법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개시명령 자체의 적법성 논란은 차치하고, 그 법과 원칙의 결과는 어땠나. 파업으로 지키려 했던 안전운임제는 폐지됐고 정부는 화주 책임을 덜어낸 표준운임제를 내놓았는데 “대기업 화주의 이익만 대변한다”고 보는 화물연대는 다시 파업을 거론하고 있다. 정부는 힘을 과시했고 대기업들은 이익을 챙겼으나 해결은 안갯속이다.

뒤이은 건설노조 압박은 집회·시위의 자유 제한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이 “건설현장에서 불법·폭력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고 거론하며 경찰 특별단속을 개시했고, 올 2월 ‘건폭 완전 근절’을 지시했다. 수사는 924명 검찰 송치, 103명 구속, 양회동씨 분신 사망, 강압수사에 반대하는 건설노조 집회 확대로 이어졌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집회의) 어떤 불법행위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여당과 경찰은 야간집회 금지 입법, 강제해산 방침 등 후속조치를 신속하게 마련했다.

윤 대통령의 강경한 태도는 나름 계산된 선택일 것이다. 취임 후 20%대까지 떨어졌던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40%선을 회복한 것이 지난해 12월 초 화물연대 파업 대응 때였고, 최근 오름세 또한 한미정상회담에 이은 건설노조 압박 효과로 해석되고 있다. 노조를 때릴 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는 건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문제는 사법적 대응으로는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타협해야 하는 문제를 결코 풀 수는 없다는 점이다.

법치를 내세워 권위주의 정부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이 우려스럽다. 노동자가 오직 분신으로만 항의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한 언론의 추정 보도에 영합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분신 방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군경의 총에 시위대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맞서던 시대도 이미 지났다. 물대포도 각목도 없는데 이제 노상방뇨 때문에 시위를 제한하겠다는 건가.

4·19혁명 이후 시민의 저항과 적극적인 의사 표출은 한국 민주주의를 성숙시킨 중요한 동력이다. 피 흘려 얻어낸 시민의 자유로 대통령 탄핵도, 탄핵 반대 시위도 가능해진 것은 우리의 자랑이다.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헌법적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란 원래 그런 것이다. 사법을 동원해 ‘질서 잡힌 사회’를 만들겠다는 시도는 시민의 자유를 대가로 치르게 돼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엄격한 법과 원칙이 아니다. 시끄럽고 불편한 것을 참아낼 줄 알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할 줄 아는 포용력과 타협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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