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서 '소셜 북카페 하치도리샤' 운영
아비코 에리카 점장 "한국인 방문도 기대"
일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개막한 지난 19일 저녁. 교통 통제로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인근 음식점과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아 거리가 어두컴컴한 가운데, 한 작은 건물 2층 창문에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히로시마와 세계를 연결하는 북카페’란 슬로건을 내세운 ‘소셜 북카페 하치도리샤’다.
한국어로 ‘벌새의 집’이라는 뜻인 이 북카페에 들어서니 목재로 만든 가구와 책장에 빼곡한 사회 분야 서적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어 정교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이다. 나무 모양으로 장식된 벽에는 이곳에 온 사람들이 자신의 바람이나 생각을 적은 색색의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마음껏 진지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카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카페의 주인 아비코 에리카(44)의 말이다. 두세 사람만 모여 식사해도 정치·사회 문제를 화제로 삼는 한국인과 달리 일본에선 지인들끼리 그러한 소재를 비롯해 진지한 얘기를 하는 걸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이 일본 땅을 처음 밟은 한국인에게 “일본인에게 정치 이야기, 특히 독도나 역사 문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다”고 충고하는 것도 그래서다.
어렸을 때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부조리한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아비코는 이런 분위기가 불편했다. 그런데도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의 인생관은 고교 졸업 후 3개월간 비영리기구 ‘피스보트’의 배를 타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바뀌었다. 체념하는 것 자체가 사회 문제의 해결을 늦추는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후 피스보트 히로시마 지부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 단체에서 10년 동안 활동하다 2017년 카페를 열었다. 아비코는 “정치나 사회 이야기를 꺼내면 ‘너무 진지하네’ ‘잘난 척하네’ 같은 반응이 돌아와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었구나’라고 느끼고 마음 편히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당시 수중엔 20만 엔(약 189만 원)밖에 없었지만, 크라우드 펀딩과 어머니로부터 빌린 돈에 더해 정책금융기관에서 창업 지원자금을 대출받았다. 그는 “10년간 사회단체 경험을 통해 쌓은 인맥으로 매일 이벤트를 열겠다는 사업기획서가 잘 통한 모양”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하치도리샤 홈페이지에는 매일 열리는 행사가 월 단위로 빼곡히 적혀 있다. 매월 6, 16, 26일에는 피폭자들이 손님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각종 사회단체나 인권변호사 등 다양한 이들이 강연이나 토론회를 개최한다.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 상영회도 연다.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직전엔 비판적 시각의 시민 강연이나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비코는 “피폭지 히로시마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며 “히로시마에서 ‘핵 억지력’을 이야기하다니,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5년 동안 꾸준히 운영한 결과 이젠 입소문이 나 일본 전역에서 손님이 찾아온다. 이날도 이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와 홋카이도 출신의 사진작가, 도쿄 주재 민영방송 기자 등 다양한 손님이 방문했다. 이들은 한 테이블에서 식사와 함께 맥주나 하이볼을 마시며 ‘진지한 이야기’를 즐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G7 흥행을 위한 쇼일 뿐, 진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의 화장실이 깨끗한 역사적 이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비코는 “처음 온 손님도 환영하니 자신 있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한국 손님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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