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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포닥이다”

입력
2023.05.29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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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화학공학을 전공한 30대 초반 프레시(1년 차) 박사입니다. 타이틀이 박사인데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국내 연구기관에 포닥을 왔는데, 이 선택이 맞는 건지, 이걸로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이공계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런 고민이 수두룩하다. 선배들의 댓글 조언은 실질적이다. “박사학위가 인생을 보장해 줄 거란 믿음은 하루빨리 버리는 게 좋습니다.” “어디 있든 퍼포먼스(논문 실적)가 중요해요.” 유독 한 문구가 눈에 띈다. “아프니까 포닥이다.”

□ 포닥은 ‘포스트 닥터’(박사후연구원)의 줄임말이다. 교수나 정식 연구원이 되기 전 일정기간 연구경험을 쌓는 이들을 말한다. 학위 받은 직후라 연구에 대한 열정도 실력도 상승세지만, 얼마 안 가 현실에 낙담한다. 대부분 계약직이라 경제적으로 어렵고 신분도 불안정하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중간 어디쯤에서, 잡무를 감당하느라 정작 ‘빅 페이퍼’(뛰어난 논문) 낼 시간은 챙기기 쉽지 않다. 포닥 없으면 안 돌아가는 연구실이 부지기수인데, 대우해 주는 곳은 흔치 않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포닥의 세전 평균 연소득은 3,700만~4,400만 원(2020년 8월 기준)이다.

□ 포닥이 되는 시기는 대개 30대 초·중반이다. 결혼과 육아까지 겹쳐 “바닥을 치는 기분”에 시달렸다는 경험담, 번아웃에 우울증이 왔다는 사연이 널렸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못 찾아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포닥 낭인’도 있다. 미래가 보장되는 의사 대신 과학자의 길을 택한 걸 후회하다가도, 아프니까 포닥이란 자조 섞인 말로 서로를 다독인다.

□ 뒤늦게 정부가 포닥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작 했어야 할 조치를 이제야 하는 걸로 충분할 리 없다. 국내 이공계 포닥은 5,000여 명(1~3년 차)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아프지 않아야 AI 시대, 우주 시대를 바라볼 수 있다. 이공계 자퇴생이 서울대와 연·고대에서만 1,300명이 넘는다. 포닥의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 숫자는 줄지 않을 것이다.

임소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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