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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요와 가곡의 찬란한 100년 변천사 뒤엔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입력
2023.05.29 10: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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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최근 4장의 CD로 발매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우리 동요 100' 음반 표지.

최근 4장의 CD로 발매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우리 동요 100' 음반 표지.

범용성 높은 한국 여권을 위조해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면서 일부 국가의 입국심사대에는 '한국인 인증 시험'이 등장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나리 나리 OOO'라고 쓰고 공란에 들어갈 단어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보자마자 '개나리'라고 쓴 사람도 있겠고, 반사적으로 '솔미솔미 솔라솔' 음정을 흥얼거린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모국어로 노래한 동요야말로 누군가의 정체성, 국적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됐다. 어린이날 제정 이듬해부터 동요를 만들고 불렀으니 창작동요의 역사도 100년이 돼 간다. 100년의 기록을 담은 음반 '우리 동요 100'을 보면 시대에 따라 달라진 동요의 변천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당시에 쓰인 옛 동요 명곡에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다룬 평화와 독립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한동안 불리지 않았던 동요는 지난 30여 년간 창작동요제를 통해 새로운 단계를 맞았다. '꼭 안아줄래요', '달팽이의 하루'처럼 어린이 눈높이에서 바라본 친구와 자연에 대한 가사가 눈에 띈다. 편곡에 따라 발라드로 구분돼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도 감동을 준다.

최근 4장의 CD로 발매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우리 동요 100' 음반.

최근 4장의 CD로 발매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우리 동요 100' 음반.

한국 가곡 100년의 역사도 비슷한 흐름을 갖고 있다. 옛 가곡이 점잖고 서사적이면서 전통적이고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최근 창작 가곡은 현실에 밀접한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심지어 '가곡'이 아닌 '아트팝'으로 명명한 작곡가 김효근의 가곡들을 비롯해 윤학준, 이원주 등의 인기곡들은 우리말의 아름다운 뉘앙스를 매력적인 선율에 담아 널리 불리고 있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변화된 가곡 흐름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관객들은 성악가가 '아는 노래'를 불러줄 때도 좋아하지만 잘 몰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곡들을 좋아합니다. 어릴 땐 가곡을 많이 부르고 들었지만 아무도 가곡을 부르지 않고 귀담아듣지 않던 시기가 10여 년 정도 있었어요. 빠르게 변화한 현실과 옛 가곡 사이의 거리감 때문이었을까요. 요즘 가곡은 클래식한 예술가곡의 형태보다는 대중음악의 이점을 더 가져온 것 같아요. 시대마다 유행하는 가곡이 있다고 할 때 처음 들어도 마음에 쏙 드는 멜로디, 무엇보다 가사가 대단히 아름다워요."

많은 무대에서 슈만과 슈베르트의 가곡을 노래해 온 테너 김세일 역시 한국 가곡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순수성을 지켜야 할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시대를 반영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창작물로 이어져야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변화와 창작과 소통을 멈춘 예술이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우리말 뉘앙스와 정서를 담은 가곡이 클래식 극장을 벗어난 곳에서도 널리 불리게 된다면 그런 곡들이야말로 고전으로 남을 수 있겠죠."

작곡가 김택수(왼쪽)와 베이스 연광철. ⓒEstro Studio Haksoo Kim·한국일보 자료사진

작곡가 김택수(왼쪽)와 베이스 연광철. ⓒEstro Studio Haksoo Kim·한국일보 자료사진

작곡가 김택수는 올여름 베이스 연광철이 노래하고 발매하게 될 한국 가곡 앨범에 황경민 시인의 '산복도로'와 나희덕 시인의 '산 속에서'에 곡을 입힌 가곡을 수록하게 된다.

"10여 년 전부터 랩, 힙합 돌풍이 있었죠. 시와 음악의 경계에 있는 장르가 각광받으면서 창작자들 및 대중까지 한글을 어떻게 활용해 가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레 하게 된 것 같아요. 랩에서 자주 쓰이는 우리말과 음악의 결합 방식을 가곡, 오페라 등 다른 장르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창작자로서 우선 제가 자극을 많이 받아요. K팝과 한류로 인해 해외에서도 한국 가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시기인 만큼 양질의 우리말 가곡이 더 많이 생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자주 연주될 수 있으면서 성악가의 소리를 빛내 주기 용이한 피아노 반주로 된 가곡들이 파급력이 클 것 같습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대부분을 이탈리아어로 썼지만 '바스티앙과 바스티엔', '후궁탈출'에 이어 말년의 '마술피리'는 독일어로 완성했다. 일부 사람들은 독일어는 오페라에 적합한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마술피리'는 징슈필(Singspiel·독일의 민속적 노래극)의 최고 작품이 됐다. 후대 작곡가들은 자신들의 고유 언어로 가곡과 오페라를 완성하면서 독일어와 독일 시인들의 매력을 확장시켰으며 음악에 실린 언어를 통해 독일 낭만주의 사조를 이끌었다.

풍파 많았던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 동요와 가곡은 음악과 언어를 공유하며 같은 역사를 가진 공동체를 결속시켜 왔다. 100년 역사를 가진 한국 동요와 한국 가곡의 또 다른 100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다. 나아가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에서 한국어로 된 오페라가 불리게 될 미래를 꿈꿔본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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